한국일보

프라이버시

2007-09-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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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문화가 친숙한 캘리포니아에선 유행하는 드라마가 비디오가 바로 들어와 그 영향력이 대단하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혹은 주말에 밀린 비디오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는 표현도 들린다. 드라마가 뜨면서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연예인에 대한 호기심 또한 적지 않다.
워낙 작은 땅에서 자라서인지 자연보다는 사람들에게 유독 필요 이상의 관심이 쏠린다.
그래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패션이나 메이컵등 획일화 된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자신감이 없거나 주변의 낯선 시선으로 불안해 한다. 미국처럼 여러 인종과 문화가 섞이지 않은 유일한 단일민족이라 똑같거나 비슷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다.
내가 정해 놓은 기준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방이 누리고 싶은 자유마저 쉽게 빼앗아 버린다.
물론 그런 특성이 어찌보면 기발한 아이디어나 반짝 유행으로 단숨에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교민사회라 타인에 대한 관심 또한 지대하다.
남이야 집을 사든 말든 관여하지 않아야 할 것도 신문 기사 몇 줄에 동요하며 만사 제키며 말린다. 주일 지나 월요일 아침이면 그나마 정성 들여 오픈한 에스크로를 깬다는 전화가 줄을 잇는다. 주변의 성화로 어렵게 집장만 하려 했던 그 결심을 또 다음으로 접어 버린다.
어느 모임에 가도 잘샀다는 소리 한 번 듣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참 집 값이 오르면서 에퀴티로 그 빠듯하게 살던 이민생활에서 아주 잠시라도 풍족한 여유를 느끼느라 몇 밤 지새우고 뽑은 세단차에 수없는 질문이 오간다. 상대방의 나아지는 형편을 보며 진정으로 축하해 주는 마음보다 내가 타지 못한 묘한 감정에 ‘고급차일수록 타자마자 값어치가 크게 떨어진다’는 달갑지 않은 소리만 반복한다. 또한 찬바람 불면서 서서히 유행처럼 번지는 성형에 뒷소리가 분분하다. 성형수술은 외모의 콤플렉스로 평탄치 않은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겐 그들의 열등감 회복이란 차원에서 환영받을 일이다.
무조건 내가 하지 못한다고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아름다워진 이 후의 주변 반응은 단점을 찾아내듯 쉽게 가십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내 외모를 맘대로 고치는데도 주변 사람들 의견에 예민해진다.
당사자가 아니면 누구도 그 고충을 공감하지 못 하는데 질타를 멈추지 않는다.
외모뿐 아니라 사생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혼자사는 경우가 많은데 직업상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여성들은 공적인 만남도 자유롭지 못하다.
에이전트 중에서 싱글맘으로 열심히 사는 동료들 중엔 고객과의 약속도 꽤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드라마처럼 로맨스가 생길 것도 아닌 그저 일로 만나는데 몇 번을 반복하면 쓸데없는 소문에 휘말린다.
상대방에게 진정한 애정을 갖지 않고 비판하는 것은 접어야 한다. 힘들게 현실에 적응하며 꿋꿋하게 살려는 그들을 격려하지는 못 할 망정 어설픈 관심으로 쉽게 상처내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좀 더 자유롭게 살아보려 이민보따리 바리바리 싼 기억이 되살아 난다면 남을 내 편견으로 묶지 말고 인정해 주는 지혜를 가져봄이 어떨까?
살다보면 나와 상관없는 일이 별로 없고 지켜주는 만큼 되돌아 오는 세상이니까.
(562)304-3993

카니 정 /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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