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장에서-인생이 다 그런 거예요!

2007-09-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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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다 그런 거예요.”
순간 나는 약간 놀랐다. 늘씬한 키에 세련된 차림의 3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에게서 아무런 감정도 없이 나오던 말은 나를 좀 무색하게 했다.
노동절 연휴를 넘긴 지난 화요일 아침, 9시가 조금 넘었는데, 창구엔 긴 줄의 기다림이 있었고, 은행 측은 빠른 서비스를 해주려고 부산스러웠다. 마침 한 직원이 “입금하실 분만 이쪽으로 오세요”하며 손을 흔들었고 몇 사람이 손의 움직임을 따라 줄을 섰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만 쓰는 문이 달린 텔러 창구였다. 이미 한 창구에는 손님이 있었고 70세는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큰 가방을 손에 들고 나보다 먼저 재빠르게 앞에 서더니 그 문안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양쪽 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고개를 쑥 빼어 그 안을 들여다보니 1달러와 5달러짜리의 시퍼런 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은행원은 세기에 바빴다. 길게 늘어섰던 일반손님들의 줄은 예상 외로 잘 움직여 만약 내가 그 자리에 그냥 있었더라면 벌써 볼 일을 마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즈음 같은 시각에 나와 함께 줄을 섰던 뒤의 여자를 돌아보면서 웃음이 났다. 어깨를 슬쩍 올리며 약간은 후회하는 몸짓으로 운 없는 상황에 대한 멋적은 표정이었는데 그녀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기다렸다는 듯이 차분하고 낮은 소리로 “인생이 다 그런 거예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핸들을 잡을 때 가끔은 운전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트래픽이 심한 프리웨이를 달릴 때, 어느 차선이 잘 빠지는 것 같아 그리로 옮기고 나면 그 쪽은 막히고 오히려 먼저 차선이 더 잘 나가는 경우가 있고, 시내에서도 스톱 사인을 받고 서 있다 보면, 옆 차선에선 저 뒤에서 부터 달려오던 차가 정차하지도 않고 나보다 먼저 바뀌는 파란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나의 잘잘못과는 상관없이 프리웨이 한복판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갇혀있는 경우를 여러 번 당하게 되듯이 우리의 삶에도, 내가 아무리 주의를 해도 운명 같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닥쳐올 수도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야기된 금융대란은 부동산 시장의 문제 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 아니 전세계 경제 전반에 무섭고도 엄청난 문제를 몰고 왔다. 나 하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심각한 상황, 그 속에서 스러지지 않고 견뎌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몇 세기만의 호황이라며 모두가 흥분해 있을 때, 나의 선택은 이성적이었던가? 욕심과 요행의 심리는 없었던가? 나는 나의 분수를 알았던가? 설혹, 이성적이었고 큰 욕심도 없이 나의 분수에 맞게 행동했었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불경기로 오는 어쩔 수 없는 홍수의 덮침을 어쩌겠는가?
어려움이 닥쳐오는 것이 어디 꼭 돈뿐이랴. 나는 그 보다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오히려 문제 중에서 돈 문제는 그래도 쉬운 문제라고 하지 않던가? 땀 흘려서 벌던지, 하다하다 안되면 파산선고를 하면 해결되는 것이지만 인간관계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고 한번 상처가 나면 되돌리기 힘든 복잡 미묘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짓 없이 서로 신뢰하고, 성실하고 근면한 삶 속에서 서로 아끼며 섬기는 마음으로 어우러지는 인간관계야 말로 설혹 “인생이 다 그런 거다”라고 하더라도 담담하게 받으며 다 그렇고 그런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 낼 수 있지 않을까?
(323)541-5603
로라 김
<원 프라퍼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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