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녀’(Live-in Maid)

2007-08-31 (금)
크게 작게
‘하녀’(Live-in Maid)

하녀 도라(왼쪽)와 주인 베바가 함께 미용실에 왔다.

고운정, 미운정 30년

상류층 부인과 하녀 두 여인의 애증 그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류층 부인과 이 부인과 오랫동안 함께 살며 집안일을 돌보고 있는 하녀간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한 2인극 스타일의 소품이다. 작품은 비록 작지만 감정적 심리적 깊이가 깊고 빈틈없이 잘 짜여진 영화로 특히 간단한 제스처와 야단스럽지 않은 감정묘사로 계급과 출신 배경이 다른 두 여인간의 애증이 섞인 관계를 절묘하게 보여주는 두 여배우의 연기가 뛰어나다.
아르헨티나의 재정위기로 국가 경제가 파탄에 이르기 시작하던 때. 물려받은 유산을 잘못 투자해 재산이 바닥이 날 지경에 처한 베바(노마 알레안드로)는 방이 많은 큰 아파트에 살면서 잘 차려 입고 꾸미는 데만 신경을 쓰는 도도한 부인.
이 아파트를 티끌 하나 없이 정리하고 베바의 온갖 지시에 순응하는 하녀는 도라(노마 아르헨티나). 둘은 거의 침묵의 관계를 유지하나 함께 30년을 살아 은연중 매우 가까운 사이. 그러나 둘 간의 계급과 배경의 차이로 둘은 이런 근접한 관계를 표현하지 못한다. 둘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
베바에게는 마드리드에 사는 딸이 하나 있지만 이 딸은 어쩌다 전화를 하면 콧대 높은 어머니보다는 도라와 얘기하기를 즐긴다. 도라에게는 애인이 있어 도라는 가끔 그에게 베바의 변덕과 무분별과 잔인성을 털어놓다가도 베바의 품격과 우아함과 고상한 취미를 찬탄한다.
베바는 감정파여서 도라를 냉정하게 취급하다가도 기분이 나면 턱없이 관대하게 군다. 그런데 베바가 투자로 돈을 몽땅 날리고 도라에게 더 이상 월급을 주지 못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보다 극적인 국면으로 접어든다.
도라는 애인과 함께 서민층이 사는 곳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일자리를 찾을 생각이고 베바는 화장품 판매를 시도하나 호화롭게 살던 귀족 스타일의 여자여서 그 일을 제대로 해 낼 수가 없다. 수십년간 도라에게 의지해 온 베바가 과연 도라 없이 살 수가 있을 것인가.
작은 이야기 속에 섬세한 감정을 가득 채운 영화로 평범한 두 사람의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정의 역설과 함께 자신들의 존엄성을 파괴해 들어오는 상황에 맞서 그것을 지키려는 도전정신을 그린 훌륭한 영화다.
신비감마저 지닌 영화로 외부의 압력과 오랫동안 잠복해온 내부 균열에 의해 갑자기 변형돼 가는 오랜 ‘가족’관계를 파헤쳤는데 이름이 똑같은 두 여배우의 상반된 모습과 연기가 뛰어나다.
아르헨티나의 고참 빅스타로 세계적 배우인 알레안드로의 도도하나 내면에 허점이 보이는 연기와 이에 대조적으로 조용하면서도 강건한 존재를 느끼게 만드는 아르헨티나의 듀엣이 완벽한 화음을 이룬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진짜 하녀 출신의 비배우로 이 영화가 데뷔작. 호르헤 가게로 감독(각본). 성인용. 랜드마크(310-281-8233).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