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2007-06-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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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암아’ 있음에

유대교에서 성서를 구체적인 실제 상황에 적응시킬 목적으로, 성서에 대한 주석을 시도한 유대문학의 유형을 일반적으로‘미드라쉬’라고 합니다.
따라서 미드라쉬는 성서의 학문적 주석이나 자의적 해석보다는, 성서에 숨겨진 깊은 뜻을 찾고자 한 성서 연구 방법의 하나로, 2세기부터 13세기까지 성행한 주석문학을 일컫는 용어라고 합니다.
유대문학인 미드라쉬에는 다윗 왕에 관한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잘 알려진 바대로,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서, 유대 통일 왕국을 건설한 위대한 왕으로 추앙 받고 있습니다.
통일 왕국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어느 때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교만했고, 전쟁에 패해서는 절망했던 경험들을 수없이 겪어본 다윗 왕은, 어느 날 궁중의 연금술사를 불러 반지 하나를 주문하면서, 그러한 교만이나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 한 마디의 글귀를, 반지에 새겨 넣도록 명령합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연금술사는 아름다운 반지는 자신이 쉽게 만들었으나, 그 글귀만은 도저히 스스로 지을 수 없음을 깨닫고, 결국 오늘날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 왕자를 찾아갑니다.
연금술사로부터 전후 사정을 듣고 난 솔로몬 왕자는 잠시 고심한 끝에, 이러한 글귀를 반지에 새겨 넣도록 지시합니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위의 글귀는 삶의 과정에서 우리들이 겪게 되는 수많은 경험들은 모두 다 일시적인 것들로서, 언젠가는 지나가고야 마는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따라서, 우리들로 하여금 성공이나 행운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한편, 좌절이나 치욕, 비탄, 불운 등이 주는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의욕과 희망을 가지게 하는 절묘한 메시지라고 하겠습니다.
샤카무니 붓다(기원 전 624-544)께서는 ‘모든 것은 모여서 이루어진다. 모여서 이루어진 모든 것은 소멸하고 만다’라고 하셨습니다. 언뜻 들으면 싱겁기 그지없는, 그러나 더 없이 깊고 오묘한 우주의 원리인 연기법을, 붓다께서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우주의 존재와 현상은 여러 조건들인 인의 씨줄과 연의 날줄로 엮여져,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것들이기에, 그들 인연이 다하면 언젠가는 속절없이 흩어져 사라지고 만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뜻으로, 불교에서는 무상을 말합니다. 무상이란 용어는 가끔, 허무나 염세의 의미로 오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들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이 또한 곧 지나갈’ 무상성을 알아차릴 때, 존재와 현상에 대해 우리들이 갖게 되는 갈애와 교만, 그리고 절망과 비애, 혐오와 증오 등, 고통의 원인이 되는 잡다한 감정들은 순화되고 정화됨으로써, 우리들은 비로소 세상을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이 또한 곧 지나갈 것들’의 무상성은 연기법의 지배를 받습니다. 왜인고하니….
“그리하여, 세상은 모두가 ‘말미암아’ 있음으로.”

박 재 욱 (LA관음사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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