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2007-06-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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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깎이

아이가 여섯인 우리 집엔 손톱깎이도 쉴 새가 없다. 큰아이들 셋은 각자 해결하지만 아래 세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손톱을 깎아주고 있다. 그런데 손톱을 깎을 때마다 감사가 늘어나는 게 참 재미있다.
먼저 손톱을 깎으려면 두 손으로 아이들의 열 손가락을 하나씩 만져야 한다. 그것도 대강 만지는 게 아니라 아주 조심스럽고 사랑스런 터치로 그 여리고 고운 손가락을 만질 수 있는 기쁨이 있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인형 같은 아기의 손가락에 반했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어쩜 그렇게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눈곱만큼 작고 여린 아기의 손톱이지만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이 아름답게 생긴 모양에 신기한 두 눈이 자꾸만 커졌었다.
처음엔 열 손가락을 잘 펴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주먹을 쥐고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자라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도 주물러주며 잔심부름도 서로 하겠다고 예쁜 짓을 하는지…. 아이들만 바라봐도 주님 주신 축복이 너무 고마워 눈시울이 젖어든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손톱 깎는 시간에 행복 나이테가 더해간다. 아이들이 여럿이라 골고루 사랑을 주기가 쉽지 않은데 손톱 깎는 시간을 통해 십여분이 지나도록 손가락 열 개와 발가락 열 개를 하나하나 만져가면서 사랑의 대화를 이어간다.
땀이 많은 다섯째 예일이는 손톱을 깎을 때마다 물수건을 준비해서 애교를 떨어댄다. 손톱 하나가 예쁘게 깎아지면 물수건에 손을 문지르고 엄마 손까지 시원하게 해주며 100만달러 짜리 꽈배기 미소를 아끼지 않는다.
여섯 중에서 제일 약한 넷째 예나는 살이 없어서 손톱을 깎을 때마다 사랑살을 손가락마다 붙이곤 한다. “우리 예나가 이렇게 예쁘고 날씬하게 자라서 엄마는 얼마나 좋은지 몰라. 검지 손가락에도 통통하게 살이 붙고 약지 손가락에도 복스럽게 살이 붙으면 좋겠네. 그지, 예나야?”
열 손가락을 엄마한테 떠맡긴 예나는 너무 행복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연년생으로 동생 둘을 두어서 한살 때부터 엄마 품을 양보했던 ‘어른 같은 아이’.
드디어 막내 자슈아 차례다. 아들 녀석이지만 여섯째라 그런지 유난히 샘이 많다. 손가락만 잡아도 심하게 간지럼을 탄다. 품안에 쏙 안기며 자슈아는 엄마 얼굴에다 뽀뽀를 해댄다. “아일 러뷰우 마미~”
생각할수록 송구한 감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일주일에 한번씩 손톱 깎는 날엔 그 감사가 수십 배로 늘어나는 ‘누룩 행복’이 된다. 가끔씩이지만 시간을 내서 큰 아이들과 남편의 손톱도 깎아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열 손가락, 발가락을 만지면서 알콩달콩 사랑이 자꾸만 깊어진다.
여섯 번 임신해서 배가 만삭이 될 때마다 혼자 어떻게 발톱을 깎겠냐며 발톱을 깎아 줬던 남편에게 사랑 빚을 갚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손톱깎이는 행복을 만드는 도구다. 그 작고 모양 없는 손톱깎이가 쏟아내는 행복의 분량은 이미 우리 집 구석구석에 쌓여있다. 사랑의 대화가 마음을 순화시켜 주고 부드럽게 만져주는 사랑의 스킨십이 서로가 꼭 필요한 사람들임을 확인시켜 준다. 매일매일 자라나는 손톱 발톱을 깎아내듯, 쉬지 않고 자라나는 나의 이기심과 죄성도 같이 깎였으면 좋겠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자신도 돌아보기 어려운 스피드 시대라고 하지만 잠시 시간을 멈추고 손톱을 깎는 일도 마음만 먹으면 행복한 일상이 된다. 가정은 천국의 축소판이라고 하지 않는가? 천국이 어떤 곳이냐고 묻는 아이에게 “천국은 바로 우리 집과 같은 곳이란다”고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어 오늘도 간절한 기도손을 모은다.

정 한 나 (세계선교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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