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동산 일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2007-03-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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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수폴(Sioux Falls) 공항은 온통 흰색으로 덮여 있었다. 콜로라도주 덴버 공항을 떠난지 1시간 남짓 만에 다다른 사우스다코타주, 미국 유학의 첫 발길은 그 곳에서 시작되었다. 누런 뿔테 안경을 낀 노인 기사분이 천천히 말을 건넸다. 어디서 왔느냐고. “코리아.-” 그가 나지막이 되뇌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그는 한국 전쟁 참전용사로서 기억을 떠 올리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제는 이산가족, 남북으로 갈라선 민족.
교정에 들어서니 음악실에서 인디언 전래악기인 플룻의 은은한 가락이 들려왔다. 플룻의 아버지 칼로스 나카이가 노래했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애환이 들리는 듯했다. 인디언 수(Sioux)족의 고향에서 듣는다.
아버지인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고 어머니라고 믿었던 대지에서 양식을 빚어 살던 적색 인종. 인디언들의 문화는 토지에서 비롯된다. 언덕 위에 서서 신과 대화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시를 지어 노래하던 음유시인들. 땅을 숭배하고 자연의 섭리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그들이다.
인근 러시모어 산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과 인디언 투사인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의 조각바위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면서 침묵 속에 교감하고 있었다.
큰 바위 얼굴이 미국 역사의 힘찬 전진과 웅장함을 대변한다면 크레이지 호스는 학살에 의해 사라진 영혼을 대변한다. 러시모어 산 위에 세워진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초대), 토머스 제퍼슨(3대), 에이브러햄 링컨(16대), 티어도어 루스벨트(26대) 등 4명이다. 크레이지 호스는 그 곳에서 27km 떨어진 산줄기에 자리 잡고 있다.
크레이지 호스는 남북전쟁 후 인디언과 영토분쟁이 치열했던 시기인 1876년 용맹을 떨쳤던 수족 전사의 이름이다.
크레이지 호스는 리틀 빅혼 전투에서 미국 기병대 존 커스터의 군대를 대파하는 공적을 세운 인디언의 전설적 영웅이다. 크레이지 호스의 전신상은 1948년 착공되어 59년째 조각되고 있다. 높이 171미터, 길이 195미터나 되는 거대한 얼굴엔 전사의 정기가 서려 있다.
크레이지 호스는 1842년 블랙힐스 인근 래피드 계곡에서 주술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라코타 수족 출신으로 테톤 오글라라(Oglala)족의 지도자로 나선다. 1863년에는 훙파파 수족의 수렵 구역에 침입한 백인들을 물리쳤고 1876년에는 테톤 수 부족연합의 대추장이 되었다. 첫 전투에서 인디언은 승리했지만 반격의 공포가 몰아쳤다.
크레이지 호스는 기진맥진한 1,000명의 부족을 이끌고 인디언 거주지로 도피했다. 그는 1890년에 네브래스카에서 기병대원들에 의해 사살 당한다. 원주민 고향의 묘소인 운디드니(Wounded Knee: 상처난 무릎) 땅에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묻혔다. 황량한 언덕 위에 세워진 비석에서 크레이지 호스의 안타까운 한 줄기 신음소리가 들려올 뿐이다.
그들의 땅에 지금 다시 봄이 찾아와 있다. 그 언덕에 들꽃 피고 따사로운 햇살 내리건만 수족 인디언의 함성은 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부락은 이미 무너져 내렸고 그들 육신의 숨결은 멈추었다. 영혼을 위해 봉화를 지펴 올린다.
돌과 바람과 구름을 사랑했던 전사들이여- 동료들이 잠든 토지 위에 침묵 지키며 바람 맞는 그대 크레이지 호스의 영광이여- 창공의 날개로 부활하여라. 힘찬 북소리 울리면서 말발굽 소리 밟으면서 저 평원 끝으로 몽골리안의 후예답게 눈이 부시도록 그렇게 달려가거라. 아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찾아오는가. (213)590-5001
luxtrader@naver.com

김준하 <윈 부동산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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