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장에서 ‘떠날 준비’

2007-03-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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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은 반드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 보다 더 확실한 진리가 있을까? 사람의 생명은 오래 살아야 100년, 그 날들이 얼마나 길지 짧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날은 반드시 온다.
오래 전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친구가 있었다. 남편은 의사였고 여자는 집에서 아이들 키우며 살림하고 착하고 귀엽게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청천벽력같은 일을 당하고 난 뒤, 그녀의 삶은 예전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물론 사랑하고 의지하던 사람을 잃은 상실감도 말할 수 없었지만, 그 뒤로 따르는 매일 매일의 돈과 관련된 문제들은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차고 힘겨운 일들이었다.
시간에 쫓기며 살던 남편의 사무실은 알 수 없는 서류들로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고 어느 것 하나 정리된 것이 없었다. 남편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처리했기 때문에 하다못해 체크 한 장을 써본 적이 없이 어려움과는 담을 싼 무풍지대에서 살고 있었던 그녀에게 남편이 없는 세상은 너무나 험난한 바다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열심히 일해서 재산을 모으고 선한 일에도 쓰고 나중에 남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물려주고 싶은 마음들은 누구나 갖고 있다.
그런데 준비 없이 불행한 일을 당할 때, 그런 선한 뜻이 남은 사람들에게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며 필요이상의 경비를 지출하게 된다면 그건 더 불행한 일이 아닐까? 좋은 예가 죽은 뒤의 프로베이트(Probate) 절차 같은 것이다.
바이어 입장에서야 프로베이트 세일이라면 혹시 시세보다 낮은 값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다고 하겠지만, 상속자 입장에서는 그것처럼 번거롭고 힘든 일이 없다. 오랜 시간과 많은 경비가 들어가는 것은 물론 아무런 통제를 할 수도 없고 프로베이트 법정의 절차를 그대로 따르는 방법 밖에는 없다. 만약 미리 리빙 트러스트(Living Trust) 같은 것이라도 만들어 놓았더라면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유스럽게 팔거나 명의를 바꿀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근면하고 성실한 한인들은 투자에도 많은 성공을 했다. 이제쯤은 그것을 바로 잘 지키고 넘겨주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과 그 내용을 찬찬히 적어보자. 땀과 눈물이 배인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다가오고, 적거나 많거나 그것을 받을 사람들에게 더 뜨거운 애정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잘 정리 정돈된 자산과 부채의 목록을 만들고 전문가와 의논하여 좋은 재정계획을 세워두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우리가 떠난 뒤, 말끔하게 만들어진 삶의 대차대조표는 슬픔을 이기는 이들에게 그래도 작은 선물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323)541-5603

로라 김 <원 프라퍼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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