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깊은 침묵 속으로’(Into Great Silence)★★★½

2007-03-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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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수사들의 경건한 수행 담아

거룩한 무게를 지닌 침묵 속에 갇힌 시간이 어찌나 천천히 움직이는지 시간이 멈춰 선 것 같고 영원의 시간성을 알려주는 것 같다. 저세상 구경을 하고 온 느낌과 깨달음을 주는 이 영화는 프랑스 알프스 지역에 있는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돌로 지은 수도원에 사는 수사들의 삶을 멀리서 꾸준히 바라보며 찍은 기록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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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투지오 수사들은 자연의 침묵 속에 극단적 과묵을 수행한다>

독일 감독 필립 그뢰닝은 수도원 내 촬영을 허가 받기 위해 16년을 기다렸는데 그는 수도원의 주위 자연풍경과 수도원 내의 기도실과 부엌과 의자와 책상과 마룻바닥 등과 함께 식사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명상하는 수사들의 모습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카메라에 담고 있다. 특히 자연광을 이용해 찍은 촬영이 빛과 그늘을 절묘하게 그림 그리면서 수도원 내 영적 분위기를 아름답고 우아하고 경건하게 담아내고 있다.
수사들은 극단적 과묵을 수행, 영화는 거의 무성영화 같은데(종소리와 빗소리가 들린다) 수도원과 수사들의 역사 및 개인적 배경 서술도 없고 그저 담담하고 예배드리듯 자연과 그 속에서 신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수사들의 고요한 일상을 보여준다. 영화 간간이 “너의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는 말과 “주여 당신은 나를 유혹하였으니 나는 유혹을 당하였습니다”라는 글이 나오는데 이 두 말이야말로 침묵을 지키는 수사들의 영혼의 좌표를 잘 나타내고 있다.
철저히 침묵을 지키는 수사들 중 고참들은 주 1회 밖에 모여 잠시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눈 덮인 산언덕을 수사들이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면서 아이들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원거리에서 찍은 장면이 큰 기쁨을 준다.
감독은 계절의 변화와 하루 시간의 변화를 꼬박 지켜보면서 카메라에 담았는데 이 자연시간의 이동의 리듬과 수사들의 행동의 리듬이 참 잘 어울린다. 수사들은 자연과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것 같다. 162분간의 시적이요 거룩한 명상인데 마지막에 가서 카메라를 향해 나이 먹고 눈 먼 수사가 “신에게는 과거가 없고 오직 현재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영적 감각적 미를 두루 지닌 영화다. 15일까지 뉴아트(310-281-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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