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멸살하는 천사’(The Exterminating Angel)

2007-01-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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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초현실주의 감독으로 끊임없이 제도와 조직 사회의 위선과 불의와 착취를 조소하고 비판하고 분석해온 루이스 부누엘의 영상미 탁월한 걸작 사회풍자 영화다. 1962년산 흑백.
멕시코의 상류층 인사인 노빌레가 오페라가 끝난 뒤 자기 집으로 사회 저명인사 친구와 그들의 여인들을 초대한다. 그런데 손님들이 도착하기 전 하녀들과 하인들이 이 집을 떠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한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집을 탈출한다.
손님들은 오페라의 프리마돈나 실비아와 아직도 처녀라고 소문난 발키리, 발키리에게 관심을 두는 두 남자와 한 쌍의 약혼자들과 불치의 병에 걸린 여자와 그를 치료하는 의사 그리고 임산부 리타 등. 이들은 식사시간과 이어 응접실에서의 휴식시간에 끊임없이 아무 내용 없는 공허한 대화를 계속한다.
하나 같이 위선자들인 주인과 손님들은 얘기에 지쳤는데도 누구도 집을 떠날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위선의 무도회는 계속된다. 이들은 모두 이제 집주인의 호의를 누릴 만큼 누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디너파티를 떠나려고 하지를 않는다. 마침내 체면의 표면이 부식하면서 손님들 사이로 불신과 절망감이 파고들고 이들은 주인에 대해 자기들을 집에 가두었다고 비난을 한다.
냉소적 유머 초자연주의적 이미지를 사회 기소의 도구로 쓴 명작으로 부누엘은 인간성 대신 에티켓으로 모든 것을 규정짓는 환경을 코 풀듯이 야유하고 있다. 소위 문화사회의 저변에 깔린 인위성과 위선을 풍부한 상징을 동원해 비판한 작품으로 일찍 집을 떠난 하인들을 통해 체면 때문에 집을 떠나지 못하고 아무 의미 없는 내용의 대화를 나누는 신사숙녀들을 비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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