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목신의 미로’(Pan’s Labyrinoth) ★★★★½(5개 만점)

2006-12-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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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소녀가 겪는 세가지 도전과 응전

스페인 내전 배경, 환상과
현실 넘나든 연출 빼어나

어두운 환상적 이야기를 잘 만드는 멕시코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각본 겸)이 연출한 정열적이요 짙푸른 마법적 사실주의 영화로 찬탄을 금치 못할 어른들을 위한 동화요 신화요 우화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주인공이 소녀인데 영화가 유혈이 심하고 폭력적이며 매우 어두워 등급이 R이라는 점. 그러나 영화 속 소녀처럼 환상을 믿고 도전적이요 모험심이 강한 아이들에게는 과감히 권해볼 만하다.


HSPACE=5

<오펠리아가 눈알을 뽑아 접시위에 놓은 페일 맨과 대치하고 있다>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환상과 현실을 오락가락하며 진행되는데 연출 솜씨가 유연하고 마법과 현실을 교직하는 솜씨가 빼어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암흑판이라고 하겠는데 상상력이 무궁무진한 마술사의 묘기와도 같은 초자연적 동화이자 전쟁 드라마다. 스페인과 멕시코 합작영화.
1940년대 스페인 내전 시. 프랑코군에 반대하는 게릴라의 봉기를 분쇄하기 위해 숲 속에 설치한 부대의 새디스틱하고 도도한 부대장 비달(세르지 로페스가 소름끼치는 연기를 한다)의 임신한 아내 카르멘(아리아드네 질)이 어린 딸 오펠리아(이바나 바케로가 차분하고 깊이 있는 연기를 뛰어나게 한다)를 데리고 부대에 도착한다. 어린 아이들은 어둡고 무서운 상황 속에 빠지면 혼자만의 환상의 세계로 피신하게 마련으로 오펠리아는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부대 주변을 걷다가 돌의 미로를 만난다.
여기서 소녀는 목신을 만나면서 목신으로부터 자기가 길 잃은 공주로 지하의 왕국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위험한 임무를 치러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오펠리아는 이 도전을 받아들이는데 그 중 하나는 눈이 손바닥에 박힌 해골 같은 페일 맨으로부터 도망가는 것(페일 맨을 비롯한 갖가지 환상 속 생명체들의 디자인이 기발하다).
영화는 오펠리아의 환상 속 모험과 함께 현실 속 전쟁을 같은 비중으로 묘사한다. 현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 게릴라를 몰래 돕는 비달의 하녀 메르세데스(마리벨 베르두)인데 그녀가 면도칼을 사용해 적을 공격하는 모습이 잽싼 칼잡이의 묘기를 보는 것 같다. 이 공격의 대상은 비달인데 비달이 칼부림의 후유증을 자가 치료하는 장면이 거의 코믹하다.
오펠리아의 세 가지 도전에 대한 응전과 지상의 전투가 교차하면서 영화는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종말을 향해 나간다. 영화가 처음 시작되면서 음성으로 인간 세상에 도착하기 위해 공주가 지하 왕국을 탈출했으나 공주는 결국 인간 세계에서 죽고 공주의 아버지는 딸의 영혼의 귀향을 가슴 아프게 갈구한다는 신화가 얘기되는데 이것이 영화 전체의 얘기를 간추린 셈이다. R. Picturehouse. 아크라이트(323-464-4226), 센추리15(310-289-4AMC), 샌타모니카7(310-289-4AMC), 파세오 스테디엄14(626-568-8888), 어바인 타운센터6(800-FANDANGO #143), 갤러리아 스테디엄16(818-501-512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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