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교회개혁이 아닌 것’

2006-12-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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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그동안 한인교회의 개혁을 외쳐 오면서 개혁의 방향은 교회의 민주화, 담임목사 권력의 집중방지 그리고 재정의 투명화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요즈음 이 교회개혁이라는 말이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어 우리는 당황하고 있다. 담임목사에게 교회정책 결정과 집행의 절대권을 주는 반민주적인 결정이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교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치장되고 있음에 우리는 놀란다.
성경은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지 않고 교회는 하나님이 직접 다스린다는 교권주의자들의 말이 전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뜻을 담임목사가 가장 잘 안다는 보장은 아무 데에도 없고, 담임목사가 하나님을 대리한다는 논리는 개신교의 신학이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정책 결정과 집행이 성경적이고 윤리적으로 이뤄지기 위한 제도 장치가 필요하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내 권력이 분산되어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역자도 인간이기에 그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지면 부패할 가능성이 아주 많다는 것은 교회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물론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 예컨대 장로나 안수집사들이 교회내 기득권 세력이 되어 열정적으로 사역하려는 목사의 발목을 잡는 예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신도 지도자들의 권한을 없애 버리고 담임목사 일인체제를 만든다는 것은 담임목사를 부패하게끔 만드는 일이고, 결국 그를 영적으로 사망하게 만드는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부도덕한 죄인이기 때문에 교회 내에 윤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교회 부서 가운데 건강한 긴장이 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담임목사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교회내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기 위한 이상적인 제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교회 제도를 고안해 내지 못했다.
요즈음 어느 교회에서 한 것처럼 당회를 해산하고 운영위원회 체제로 가는 것 역시 교회 정치 체제의 한 방안으로 고려될 수는 있다. 그러나 운영위원회 위원들이 교회의 각 기관으로부터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고 담임목사의 임명으로, 혹은 담임목사의 절대적인 영향력 속에서 뽑혀진다면, 그것은 반민주적이다. 교회개혁이 아닌 것이다.
교회의 헌법 개정 및 구조 변화를 담임목사에게 일임한다든지, 헌법 개정 위원의 선임권을 담임목사에게 위탁한다든지, 심지어는 직분 중심이 아닌 사역 중심의 구조라는 그럴듯한 말도 결국 모든 권력은 담임목사 일인에게로 집중되고 나머지 신자들은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반민주적인 교회 파괴 행위가 재정적인 불투명성을 덮기 위한 방편으로, 혹은 담임목사의 절대적 재정권의 확보를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다면 이것은 성도를 상대로 한 기만이다. 그런 교회의 성도들은 스스로가 속임수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어느 국민이건 자기 수준 이상의 정치체제를 가질 수 없는 것처럼 어느 교회이건 성도들의 수준 이상의 목회자나 교회체제를 갖기 힘들다.

박 문 규 (캘리포니아인터내셔널 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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