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행복한 목회의 비결(6)’

2006-11-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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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을 기억해주다니! 고맙기도 해라!

사람은 누구에게나 희로애락(喜怒哀樂) -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의 감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늘 기쁘고 즐겁지만 않고 때로는 버럭 화도 나고 억장이 무너지는 슬픈 일도 겪으면서 살아갑니다.
삶에서 가장 억울한 순간은 의사로부터 시한부 선언을 받은 순간이겠지요. 이런 감정은 저와 제 아내가 19년 전에 겪은 일이라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우리 주위에서 적지 않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저희 교우 중에도 여섯 분의 암환자가 계시니 말이죠. 지난 주말에는 폐암 투병하시는 권사님의 78회 생신잔치가 자녀손과 친지분 모두 50여 명이 모여 성대하게 벌어졌습니다. 정작 권사님 당신은 자녀들만 모이는 줄 알았지 잔치도, 목사가 초대된 것도 모르셔서 더 반가워하셨고 좋아하시는 모습이셨습니다.
이 잔치자리에서 저는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노여움과 슬픔의 현실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거기 모인 분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권사님 안색이 더 좋아지셨고 하나도 편찮으신 분 같지 않다고. 처음 폐암 진단 받으셨던 며칠 동안 큰 충격에 휩싸이셨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으시고 전보다 훨씬 환한 미소를 지금까지도 줄곧 잃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말끝마다 여러 번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 한 마디는, ‘너무 감사합니다.’
두 주 전에 케니가 제 방에 불쑥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데이빗, 대니얼과 눈을 마주쳤는데 피터가 저를 보더니 하이 파이브를 했습니다. ‘홍성학 목사님이시지요?’ 저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마가렛 자매가 내 이름을 기억해주다니! 혹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저를 부르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 형제 자매들과 눈과 손을 마주치는 순간 하나님과 마주치는 줄 알았습니다. 이 분들을 만난 지 길게는 1년 남짓, 짧게는 수개월이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습니다. 모두 자폐 장애가 있다고 하는데 만날 때마다 이 분들의 밝고 평안한 모습을 보면 전혀 아닙니다. 이 분들의 맑은 눈과 깨끗한 손이 제 혼탁한 눈동자와 손을 마주친다는 사실이, 게다가 제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게 감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복음성가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주와 함께라면…/가난해도 병이 들어도 시련의 밤 어둡고 깊어도/나는 결코 떠날 수 없어 아름다운 주의 나라를>
저와 제 아내도 청천벽력 같은 일을 겪었을 때 말로 할 수 없는 침통함에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제 마음속에서 생뚱맞게도 외마디 기도가 흘러 나왔습니다. ‘무척 힘들지만 하나님이 곁에 계시니 감사합니다.’
올 한 해 동안은 유별나게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 많았습니다. 암투병 하시던 여섯 분 중에 세 분에게는 암세포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습니다. 수양회가 있었던 날 세 분이 타고 오던 차가 프리웨이에 떨어진 철조물을 피하려다 뒤에 따라 오던 5대의 차와 함께 대형사고가 났지만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추수감사주일 전날에 히스패닉 주민 이웃초청 잔치를 열었는데 뒷정리는 시무장로님과 목자, 목녀님들이 하셨습니다. 주일 점심 식탁에 오를 터키 20마리를 튀기는 일은 영어 목회 담당 전도사님이 도맡아 해주셨습니다.
아예 사고를 당하지 않고 병고 없이 건강한 것 자체가 훨씬 감사한데도 오히려 분노하고 애통해야 할 분들이 더 기쁘고 즐겁게 사시는 모습을 뵈면 매일 고맙고 범사가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존재 자체로 감사드리는 마음이 행복입니다.

홍 성 학 목사 (새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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