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지 워싱턴은‘가진 자’의 롤모델

2006-07-0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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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부자였지만 검소절약, 무보수로 대통령직 봉사, 노예도 해방

왜 위대한 대통령인가

워싱턴 DC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마운트 버논은 워싱턴 대통령(사진)이 살던 생가다. 포토맥강을 뒤로 끼고 언덕 위에 우뚝 솟은 그의 저택은 경관이 기가 막히다. 동양의 풍수지리 전문가들도 와서 보고는 감탄한다고 한다. 워싱턴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 농장에서 노예 100명을 거느리고 살았다니까 당시 버지니아에서는 상당한 부유층 인사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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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맥강의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워싱턴 대통령의 생가 마운트 버논. 자원봉사 여학생들이 당시의 복장을 하고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안내하고 있다.

마운트 버논을 둘러보노라면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돈 많은 미망인과 결혼했다고 하더니 그 여자의 집이었나? 그러나 마운트 버논 농장은 조지 워싱턴이 로렌스라는 형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조지 워싱턴에게 형이 있다니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 그는 맏아들로 알려져 있는데… 게다가 마운트 버논은 워싱턴 대통령의 자식들이 물려받지 못하고 조카들에게 명의이전 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워싱턴 대통령은 1남1녀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돌아볼수록 고개가 갸우뚱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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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가족 그림. 의붓딸 팻시와 부인 마사. 어린이는 손녀.
(박물관 제공)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집안 내용은 좀 복잡하다. 워싱턴의 아버지는 상처를 해 재혼했는데 이 두 번째 부인에게서 낳은 맏아들이 바로 워싱턴 대통령이다. 워싱턴은 두 아이가 있는 미망인 마사 커스티스와 결혼했다.
워싱턴은 아이를 낳지 못했다. 아이를 못 낳은 이유는 그가 한때 앓은 폐병과 천연두의 후유증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사는 전남편에게서 낳은 아들과 딸을 데리고 들어 왔는데 계부인 워싱턴은 이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했다. 워싱턴은 전쟁터에서 부인에게 수없이 많은 편지를 보냈는데 부인은 그가 죽은 후 자신들의 사생활이 밝혀지는 것을 싫어해 모두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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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대통령의 부인 마사 여사로 분장한 직원이 관광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마운트 버논 농장은 워싱턴의 아버지가 산 것으로 본처의 맏아들 로렌스에게 물려주었으나 로렌스가 죽은 후 조지 워싱턴에게로 넘어갔다. 그의 사후 부인은 마운트 버논을 워싱턴 가문에 돌려주기 위해 남편의 조카들에게 물려준 것이다.
조지 워싱턴은 마사 여사와 결혼한 후부터 마운트 버논 근처의 땅을 사들이기 시작해 이 농장을 8,000에이커나 되는 규모로 키웠다. 그가 미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의회는 대통령의 연봉을 2만5,000달러로 책정했는데 워싱턴은 자신과 같은 부유층이 국민의 세금을 축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무보수로 임기를 마쳤다. 속되게 표현하면 후처의 아들 신분으로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하고 자식마저 없었던 그가 대통령직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고매한 인격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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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대통령이 타고 다니던 마차. 그는 버지니아의 대농장주였다.

워싱턴은 왜 존경할 만한 인물인가. 8년이나 계속된 독립전쟁에서 오합지졸에 사기까지 떨어진 민병대를 탁월한 지휘능력으로 유지했다. 게다가 시종일관 청렴했고, 민간인이 군부를 지휘하는 전통을 세워 놓았으며 은퇴 후 자기 집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등 가진 자로서의 시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점이 남미 국가들의 출발과 다르다. 워싱턴이 이임사에서 후세의 정치인들에게 신신당부한 세 가지 사항이 있다. 그 세 가지는 첫째 미국은 외국의 전쟁에 끼여들지 말 것, 둘째 미국은 미국 일에만 전념할 것, 셋째 정치인들이 지나치게 대립하는 파당정치를 피할 것 등이었다. 건국 230년이 지난 오늘 워싱턴 대통령의 신신당부가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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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과 그의 부인이 잠들어 있는 마운트 버논의 가족묘지.

이 철
<이사>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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