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비의 대협곡 ‘속살보기’

2006-06-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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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대협곡 ‘속살보기’

그랜드 캐년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Plateau Point. South Rim과 콜로라도 강의 중간 지점에 있다.

신비의 대협곡 ‘속살보기’

그랜드 캐년을 가로지르는 설암산악회원들.

계곡길 7마일 “아, 이런곳도 있구나…”감탄

미국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랜드 캐년. LA 한인들에게는 연휴 때마다 브라이스, 자이언 캐년과 함께 여행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진작 그랜드 캐년을 찾은 후 그 크기에 압도당해 입을 다물지 못하지만 대부분 위에서 그림을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잠시 둘러보다 떠나는 게 고작이다.
위에서 바라봐서는 도저히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그랜드 캐년을 자세히 둘러보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계곡 밑으로 내려가는 하이킹이다. 수천만년 동안 물에 깎여 고운 결을 드러내고 그 위에 굴절된 빛을 받아 신비스러운 모양으로 서 있는 봉우리들은 직접 다가서야만 그 참모습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랜드 캐년 하이킹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일단 빌리지가 있는 림(rim)과 계곡 밑의 온도가 경우에 따라서는 화씨 30도가 넘는다. 한 여름에 준비 없이 하이킹을 하다가 탈진상태로 헬리콥터의 구조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계곡 밑으로 왕복시간이 때에 따라서는 10시간 훨씬 넘기 때문에 당일에 하이킹을 완주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 등으로 그랜드 캐년 하이킹은 완벽한 사전준비가 필요한데 설암산악회가 최근 그랜드 캐년 하이킹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다.
그랜드 캐년 하이킹에 대한 방법과 형태 그리고 주의점 등을 설암산악회의 산행기와 함께 알아본다.

GRAND CANYON‘절경 산행’ 10시간…마지막 4.5마일‘고난길’


그랜드 캐년을 남북으로 갈라놓은 것이 계곡 아래로 흐르는 콜로라도 강이다. 사우스(South)와 노스 림(North Rim)을 연결하는 카이밥(Kaibab) 등산로는 제법 넓고 관리가 잘되어 있다. 전 세계에서 이 곳에 몰려드는 관광객 중 콜로라도 강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간 즈음까지 내려갔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당일로 강바닥까지 다녀온다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계획과 준비를 잘 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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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년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나귀만이 유일하게 강까지 내려갈 수 있는 수단이다.

메모리얼 연휴에 예정대로 그랜드 캐년 계곡 산행을 위해 12명의 산악회원들이 오전 7시에 집합 장소인 15번 프리웨이상의 맥도널드 식당에 도착했다. 붐비는 여행객들 속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총 4대의 차량으로 15번을 지나 40번 프리웨이를 끝없이 달리기 시작한다.
오래 전 관광 길에 들러 바라본 그랜드 캐년은 붉은 색, 옅은 갈색, 연초록의 빛 바랜 색채가 어우러져 신비한 영감을 주는 거대한 계곡이었다. 방문자 센터에서 망원경으로 캐년 아래로 내려가는 나귀행렬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데 언젠가 콜로라도 강이 있는 바닥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게 되어 괜히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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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께 도착한 사우스 림의 마서 캠핑장(Mather campground)은 나무로 둘러져 있어 쾌적한 분위기에 부대시설도 훌륭했다. 텐트를 친 후 출발점을 미리 확인하려고 몇몇 회원들과 잠시 다녀온 동안 여성 회원들이 저녁준비를 해 놓으셨다. 마련해온 밑반찬들과 상추들이 테이블에 가득한데 미리 준비한 양념 쇠고기가 차콜 위에서 익어 가는 냄새가 난다. 너나없이 젓가락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모두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캠프파이어에 둘러앉아 환담을 나눈다. 즐겁게 한밤을 보내는데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금방 솥아 질듯이 반짝거리고 있다.
일요일 새벽 4시 기상.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부지런히 장비를 갖추고 전날 준비한 주먹밥과 채소 과일 봉지를 하나씩 챙기고 셔틀버스가 출발하는 브라이트 에인절 라지(Bright Angel Lodge)로 향했다. 라지에서 출발점인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 헤드(South Kaibab Trail Head)까지 약 30분 거리, 이동하는 동안 새벽이 밝아왔다. 트레일 헤드에서 바라보니 림 아래편의 절벽들이 속세의 인간들과 거리를 유지하려는 듯이 고고한 모습으로 서있다.
그랜드 캐년의 등산로들은 관리가 잘 되어 있는 코리도 존 트레일”Corridor Zone Trail”이 있고 그렇지 않은 ‘Primitive’ 혹은 ‘Wild Area’가 있다. 우리가 통과하는 브라이트 에인절, 사우스 카이밥, 노스 카이밥 트레일이 ‘코리도 존’에 속한다. 하루에 다녀오는 ‘Day Hikes’는 퍼밋(permit)이 필요 없다. 그러나 하루 이상 묵는 백 컨트리(Back Country) 하이킹은 퍼밋을 받아야 한다.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은 사우스 림에서 노스 림으로 연결되는 길로 강바닥까지 가장 단시간에 내려갈 수 있는 길로 안내서에는 6.9마일로 기재되어 있기도 하다.
출발점에서 계곡을 따라 급히 내려가는 길 아래로 펼쳐지는 캐년의 아름다움에 카메라를 눌러보지만 일부분만 렌즈에 잡힌다. 사우스 카이밥은 대부분 산등성이를 따라 길이 나 있어 좌우로 펼쳐지는 경관이 “아 이런 곳도 있었구나! 하며 감탄을 자아낸다. 천길 아래로 콜로라도 강이 보이는 지점에서는 너무 멋있다는 생각도 잠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아찔한 절벽 위로 가느다란 한 줄기의 길을 건너온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
중간에 당나귀 행렬을 만나게 되는데 하이커(hiker)들은 길 안쪽으로 잠시 비켜주는 것이 예의이다. 참고로 브라이트 에인절 트레일에서 시작하는 나귀여행은 중간지점인 인디언 가든(Indian Garden)과 플라튜 포인트(Plateau Point)까지 보고 돌아가는 하루 코스가 있고 콜로라도 강 인근의 ‘팬텀 랜치’(Phantom Ranch)에서 하루 묵고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로 올라가는 이틀 여정이 있다.
산행에 이골이 난 하이커들에게는 나귀여행이란 별로 달갑지 않지만 그랜드 캐년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나귀만이 유일하게 강까지 내려갈 수 있는 수단이라고 한다.
내려오는 도중 아침식사를 하면서 시간을 약간 지체했지만 7마일 하산 길에 거의 5시간을 소비했다는 것이 의아했는데, 이유는 4,740피트의 급한 경사와 돌길, 패어진 길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급경사를 내려와 콜로라도 강에 이르니 무릎이 시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콜로라도 강 주변에는 부대시설로 식수와 화장실이 준비되어 있다. 또한 푸에블로 인디언(Pueblo Indian) 유적지가 있는데 AD 1200년부터는 본격적인 부락을 형성하고 살았다고 한다. 지금처럼 길이 잘 나 있는 것도 아니고, 댐이 조성되어 물살이 조용한 것도 아니었건만 어떻게 생활했는지 의아하기 만하다.
로키 산에서 눈 녹은 물이 콜로라도 강으로 흘러 네바다, 캘리포니아 그리고 멕시코를 통과하면서 수많은 인구의 식수로, 농업용수로 사용된다고 한다. 콜로라도 강으로 흐르는 지류인 브라이트 에인절 크릭(Bright Angel Creek)에서 모두들 짐을 풀고 발을 담그면서 휴식을 취했다. 잠시 후 사우스 림까지 9.5마일의 장정을 대비하면서…
강을 건너는 다리에서 여성 산악회 회원 3분을 만났다. 브라이트 에인절에서 시작하여 노스 림으로 가신다고 한다. 연세도 우리보다 한참 윗분들이신데, 총 연장 23.5마일의 남북 횡단(4,700피트 하산 & 5,800피트 등산)을 하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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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강에 도착한 후 기념 촬영한 산악회원들.

다리를 건너 리버 트레일(River Trail)을 따라 가다보니 보트로 강을 여행하는 행렬들이 지류가 잔잔한 곳에 배를 대고 휴식하는 모습이 보인다. 걸어서 볼 수 없는 그랜드 캐년의 비밀스러운 곳을 자세히 볼 수 있는 방법이 강을 따라가는 보트여행이라고 한다. 보트 종류도 몇 가지가 있는데 보기보다는 안전하며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거의 예약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좋다고 한다.
리버 트레일이 끝나는 지점에서 브라이트 에인절 트레일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무조건 오르막길. 그동안 산행으로 단련되었다고 하지만 거꾸로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산길은 적응이 안된 탓인지 쉽지 않았다. 데블스 코크스크루(Devil’s Corkscrew)라고 알려진 지그재그 길을 한참 올라온 후 뒤돌아보니 거대한 바위산 옆으로 깎은 길을 오르는 사람의 모습이 한없이 작게만 보인다. 길옆에 물이 흐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갖는다. 누군가의 배낭에서 나온 김치가 얼마나 맛있는지, 아침에 먹고 조금 남은 것인데, 한국 사람은 역시 김치가 있어야 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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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중 자주 만나는 Bighorn Sheep, 안전거리를 유지하도록 한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체력 안배에 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데 우리의 계산으로는 콜로라도 강에서 5마일을 올라와 인디언 가든에서 림까지는 4.5마일 남았으므로 절반 이상 등정을 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등반 고도가 문제였다. 지금까지 강에서 올라온 고도는 겨우 1,600피트였으며 인디언 가든에서 림까지는 3,060피트가 남은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모두들 마지막 부분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는데 4.5마일에 3,060피틀 오른다고 하면 거의 마운틴 볼디(Baldy)를 오르는 것과 같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우리는 인디언 가든에서 1.5마일 거리에 있는 Plateau Point가 풍광이 좋다고 하여 다녀왔는데 다시 인디언 가든에 도착해 보니 무릎 상태가 더욱 좋지 않았다.
힘을 거의 소진한 상태에서 오르는 마지막 4.5마일은 고난의 길이라 표현해도 좋았다. ‘스위치백’(Switchback)으로 오르는 길은 끝이 없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리 계산을 해보지만 주위에 버티고 있는 림의 절벽들을 올려다보는 순간 아직 멀었구나 생각되었다. 묵묵히 걷는 길 외에는 무엇 방도가 있으랴.
이 부근에는 일반 여행객들이 많이 내려오는 관계로 처음 산행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산행의 묘미는 벌써 사라지고 어떻게든 빨리 주차장으로 도착하겠다는 일념만 남는다. 배낭에 있던 식품을 모두 소진하고야 겨우 림 위로 올라오니 버스와 호텔에서 솟아져 나온 관광객들로 무척이나 붐빈다. 그 사이를 휘적휘적 걸어가다 보니 먼저 올라온 회원이 자동차 옆에서 반가이 맞아준다.
그랜드 캐년은 수억년 동안 거대한 땅을 깎아 내린 지형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하이킹 혹은 보트로 탐험을 해보지만 우리가 시간을 한없이 소비한들 어찌 그 전체를 알 수 있으랴. 계곡의 웅장한 모습과 층층이 흐르는 신비한 색채는 우리의 마음을 겸허하게 만든다. 이 곳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곳이며 이 곳에서 얻는 감동을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책임도 우리에게 있음을 깨닫는다.

■하이킹 주의사항
방문객들이 많이 들르는 South Rim에서 콜로라도 강까지 내려가는 길은 Bright Angel Trail(9.5마일)과 South Kaibab Trail(6.9마일)이 있다. 두 Trail 모두 길이 넓고 안전하지만 경사가 심하고 돌이 많다. 하루에 콜로라도 강까지 다녀오는 여행은 많은 체력 소모로 인해 다음 사항들을 숙지하여 안전한 여행이 되도록 한다.
1. 자동차가 다니는 Rim 위와 강 주변의 계곡과는 기온 차가 20~30도까지 난다. 아침 일찍 차가운 날씨에 출발하지만 강바닥은 110도를 웃돌 수 있다. 그늘이 거의 없으므로 일사병 방지를 위해 모자, 선글라스, 수건, 얇은 겉옷 등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2. Bright Angel Trail은 중간에 식수가 있으나 다른 Trail들은 식수를 구할 수 없다. 충분한 물을 준비한다(1리터 2병 이상).
3. 땀을 흘린 뒤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도록 소금기가 있는 스낵과 음식을 충분히 준비할 것. 휴식하는 동안 약간의 물과 음식을 자주 섭취하도록 한다.
4. 일단 내려간 길은 되돌아와야 하므로 시간과 체력 안배에 주의한다. 올라오는 길이 2배 이상 소요됨을 명심하고 무리가 된다고 생각되면 스스럼없이 되돌아오도록 한다. 어두워질 때를 대비하여 손전등을 준비한다.
5.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산양이나 사슴 등을 만나게 되면 거리를 유지하여 동물이 스스로 피하도록 배려한다.
6. 경사가 급한 곳을 다급하게 오르거나 내려가면 사고위험뿐 아니라, 무릎과 발에 무리를 초래한다. 일정한 보폭으로 천천히 걷도록 한다.

■설암산악회
설암산악회는 산행 경험이 풍부한 회원들을 중심으로 약 20명이 남가주 인근의 고봉을 정기 산행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아침 오전 7:00시에 시작하는 산행은 평균 10~15마일 거리로 약 6시간에서 9시간 정도 소요된다.
재미산악연맹 소속으로 암벽 및 겨울철 등반훈련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인 원정산행을 통한 심신 단련과 함께 회원들간의 친목도모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개별적으로 세계의 고봉인 매킨리, 히말라야, 킬리만자로 등을 다녀온 회원들이 많아 풍부한 산행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고산원정 회원들을 적극 지원해 주고 있다. 약간의 산행 경험이 있는 새 회원을 수시로 모집하는 설암 산악회 연락처는 (714)469-0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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