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처절한 실화” 110분…‘유나이티드 93’

2006-04-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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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피랍 여객기
테러리스트와
승객과의 사투
2001년 9월11일 이른 아침. 새카만 화면 속에 코란을 암송하는 소리와 함께 타악기의 둔탁한 소리가 급박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어 호텔 내 4명의 테러리스트들의 하이재킹 준비과정과 뉴와크발 샌프란시스코행 UA93편의 기장과 승무원 및 탑승객들(40명)이 공항청사 내로 들어서는 모습이 교차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날의 공항 모습이다. 마지막 승객이 탑승하고 여객기 문의 철제 손잡이가 돌아가는 것과 함께 문이 닫히는 소리에 움칠하며 전율하게 된다. 철제관 뚜껑이 닫히는 듯한 소리를 들으면서 얼마 후 저 사람들이 모두 죽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어두워진다.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된 여객기를 탈환하려던 승객들과 함께 펜실베니아의 샹크스빌에 추락한 UA93편의 비극을 그린 ‘유나이티드 93’(United 93-5개 만점에 ★★★★1/2)은 이렇게 시작된다.
영국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피의 일요일’)은 일체의 감상성이나 장식을 배제한 생생한 기록영화식의 작품으로 관객을 납치된 여객기의 현장에 옮겨다 놓는다. 카메라가 마구 요동을 하며 사실감을 극대화하는데 기내의 종말적 혼란에 시달리다 영화가 끝나면 안도의 큰 숨을 쉬게된다.
그린그래스(공동 각본)는 폭력과 대사를 가급적 자제하며 계단을 쌓듯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서 관객에게 감정적 충격을 주고 있다. 탄탄한 구성과 함께 여객기가 공중에 떠 추락하기까지의 91분간을 실제 사건시간과 같이 짜 내장이 뒤틀리는 공포감에 빠져든다. 뛰어난 서스펜스 드라마다.
UA93편이 이륙한 뒤 얼마 안돼 다른 피랍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WTC) 건물에 차례로 충돌하면서 영화는 혼란에 빠진 민간인 및 군 관제소의 상황과 UA 기내 상황을 계속해 교차 묘사한다. 그리고 UA기가 이륙한지 1시간쯤 지나 테러리스트들의 여객기 납치가 시작된다. 순식간에 테러리스트들이 승객과 기장 및 부기장을 칼로 살해하면서 기내는 아수라장이 된다.
테러리스트 중 한 명이 신을 찾으며 조종간을 잡으면서 UA기는 기수를 워싱턴 DC로 돌린다. 자폭충돌 목표물은 의사당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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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C 쌍둥이 건물이 피납여객기의 충돌로 불길에 휩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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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 93의 승객들이 테러리스트가 있는 조종실을 향해 공격하고 있다.

뛰어난 상황 묘사… 폭력자제, 긴장감 높여

인물등 사실감 극대화

납치가 자행되기 전까지 오금이 저려드는 긴장감에 옴짝달싹 못하다가 테러리스트들이 여객기를 장악하면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이 뒤로도 영화는 계속해 군의 북동항공관제섹터와 뉴욕과 보스턴 등 공항의 관제소 내부의 대혼란과 UA 기내의 상황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그린그래스는 기내 장면은 가급적 짧게 보여주면서 오히려 긴장감을 부추기고 있다. 승객들은 기내 전화와 셀폰으로 가족들에게 납치상황을 알리면서 공포와 불안에 떤다.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WTC 충돌소식을 전해들은 승객들 중 일부 남자들이 UA기가 자살용으로 사용될 것을 알고 반격작전을 시도한다. 승객들은 흐느끼면서 가족들에게 전화로 “아이 러브 유, 굿 바이”라고 작별인사를 나누고.
반격팀 중 한 명의 “레츠 롤”(‘들이닥치자’라는 이 말은 그 뒤로 만들어진 노래가사처럼 공격 신호라기보다 승객의 말 중 한 부분이었다)이라는 말과 함께 소화기와 뜨거운 물 등으로 무장한 공격팀은 먼저 조종실 밖의 테러리스트 2명을 제압한다.
이어 이들은 식사용 카트로 조종실 문을 공격하자 조종간을 잡은 테러리스트는 큰소리로 “알라 아크바르”를 외치면서 비행기를 심하게 흔들어대고 기내는 전투 액션의 열기가 폭발지점에 이른다.
마침내 조종실 안으로 달려들어간 승객들과 조종간을 잡은 테러리스트간에 조종간을 놓고 사투가 벌어지는 중에 여객기는 사정없이 지상을 향해 추락한다. 이 마지막 액션 장면은 몇 분 안되지만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말끔하게 격렬한 장면이다.
그린그래스는 영화의 사실성을 위해 일부 작중 인물을 실제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을 골라 쓰고 또 희생자들과 같은 직업의 배우를 선정했다. 사건 당일 버지니아 헌던에 있는 연방항공청 관제소에서 일한 전국 운용매니저 벤 스릴니는 자기 역을 직접 했고 북동항공방어섹터의 제임스 팍스 소령도 본인이 직접 나왔다.
이밖에 기장역의 J.J. 존슨은 실제로 UA 여객기의 기장이며 승무원 조장 샌드라 브래드쇼 역의 트리쉬 게이츠는 전직 UA 스튜어디스 출신. 또 테러리스트 중 한 명인 루이스 알시마니는 이라크군 출신이다.
이 영화는 보통 사람들의 영웅적 용기와 희생을 찬양하고 경의를 표한 것이다.
그러나 그린그래스는 승객들을 결코 영웅화하지 않고 절대절명의 순간에 할 일을 한 보통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테러리스트들마저 괴물화하지 않고 공정하게 묘사했다. R. Universal. 전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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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헌던의 관제소 책임자 벤이 급히 전화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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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 하이재킹 됐다는 소식에 승무원이 공포에 질려있다. 오른쪽은 승무원 조장 샌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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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승객이 여객기가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됐다는 소식을 가족에게 기내 전화로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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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가 급강하하자 남편이 아내를 감싸안고 있다. 오른쪽은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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