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6-04-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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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먹거리

연이어 터진 가족살해 동반자살 사건들 때문에 한인사회가 흉흉하다. 일주일 사이에 세명의 아버지가 총 여섯명의 자녀들과 아내를 불태우거나 총 쏘아 죽인 후 자살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극단적이고 포악해졌을까? 사람마다 특별한 이유와 상황들이 존재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현대인에게 참을성이 현저히 줄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정말 총이 문제다. 한인가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살인사건은 단지 총만 없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어떤 분이 “현대인은 고기를 많이 먹어서 육식동물처럼 갈수록 포악해진다”고 분석하였다. 이 분의 의견에 일면 나도 동의한다. 과거보다 고기 먹는 양이 현저히 늘어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타운에서도 잘 되는 식당은 고기집 밖에 없는 것 같다. 각종 고기+된장찌개+소주 등의 콤보구이 메뉴 파는 곳을 가보면 어디나 바글바글 문전성시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고기섭취의 양보다 질에 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불과 30년전만 해도 우리가 먹던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는 밖에서 놓아기른 자연 그대로의 소, 돼지, 닭에서 얻어졌다. 오개닉이란 단어가 없었던 그 때는 모든 고기가 오개닉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고기가 넘쳐나지만 대량사육되는 소들을 어떻게 키우는가. 소가 많이 움직이면 고기가 질겨진다 하여 꼼짝도 할 수 없는 사육장에 칸칸이 가둬놓고 기른다. 여물통에는 여물 대신 항생제, 호르몬, 각종 인공첨가물이 들어간 사료가 들어있다. 그렇게 키운 소를 잡고 나면 고기연화제며 색소를 선명하게 하기 위한 화학처치가 뒤따른다.
우리는 고기를 먹을 때 고기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화학물질 뿐 아니라 소가 평생 품었던 한과 스트레스를 함께 먹는 것이다. 꼼짝 못하고 가둬진 채 사료만 먹고 살찌면서 속으로 삭혀둔 분노와 스트레스가 겹겹이 쌓인 살덩어리를 먹는 것이다. 소고기만 그런가? 돼지고기, 닭고기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얻어지는 우유와 계란도 마찬가지이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버터와 치즈, 각종 유제품도 다를 것이 없다.
어느 건강관련 서적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동물 중 육식동물과 채식동물의 이빨을 조사해보면 사자, 호랑이 등 육식하는 동물들은 송곳니만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살점을 찢어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소나 기린과 같은 초식동물들은 송곳니 없이 어금니가 24개 있다고 한다. 당연히 풀과 식물을 되새김질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떠한가? 사람에게는 4개의 송곳니가 있다. 총 32개의 치아중 4개이므로 전체의 8분의 1에 해당된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먹는 음식 중 8분의 1만 육류를 섭취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에 맞는다는 것이다. 상당히 설득력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무서운 먹거리가 고기 뿐인가. 현재 우리가 마켓에서 사다먹는 거의 모든 식품과 음식에는 각종 방부제를 포함한 수많은 화학물질과 인공첨가물이 들어있다. 곡류와 채소도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먹고 자라고, 바다에서 잡는 생선에는 납과 수은 등 중금속이 들어있다. 수많은 인스턴트 식품들에 관하여는 따로 말할 것도 없다.
얼마전 빵집에서 케이크를 몇 종류 샀다. 그날 다 먹지를 못해 조금 남았는데 다음날 남은 빵을 먹던 남편이 얼굴을 찡그리며 ‘맛이 살짝 갔다’고 불평을 했다. 그때 나는 바로 전날 사무실에서 먹은 초코파이 생각이 났다. 몇 달전 서랍속에 넣어두고 잊어버린 것인데 그날 갑자기 출출해 꺼내 먹었던 것이다. 초코파이는 너무나 멀쩡하고 맛있었다. 그러니 몇 달을 두어도 상하지 않는 과자, 파이들에는 얼마나 많은 방부제가 들어있는 것일까?
요즘 아이들에게 성행하는 아토피는 불과 10~20년전만 해도 들어보지 못한 피부병이었다. 최근 10~20년 사이 자폐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소아암, 소아당뇨, 백혈병은 이제는 더 이상 희귀병도 아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잘못된 식생활, 먹는 것 때문에 온다고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모든 생활이 빨라진 삶, 모든 일이 기계화된 삶, 상대적 박탈감으로 스트레스가 심한 사회, 이처럼 자연에서 멀어진 삶과 환경이 자기 가족을 살해하고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음식이 범죄를 부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음식으로 인해 거칠어진 성품이 범죄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무얼 먹으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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