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4-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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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의 왕자

한밤중에 나간 승욱이를 찾아 한바탕 난리를 겪고 새벽녘에 우두커니 거실 소파에 앉아 승욱이를 안고 앉아 있었다.
넋이 나간 모습으로 앉아 언제까지 이렇게 난리를 피우면서 살 것인가에 대해 깊이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몸이 자라면서 고집도 더 세질 것이고 일 저지르는 강도도 더 세질 것인데 때마다 이런 일을 감당할 것을 생각하니 암담하다. 새벽녘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파르르 떨린다.
소란스런 소리에 아버지도 일찍 잠에서 깨셨나보다. 아버지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신다. 난 밤중에 승욱이가 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갔고, 경찰이 집에 찾아와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진 양미간을 좁히시며 “어구… 저 녀석이 언제까지 저럴 거냐… 저러다 애미 잡겠다. 잡겠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아버진 딸을 더 먼저 걱정하시나 보다.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시며 승욱이를 붙잡고, “에구, 이 녀석… 밤낮이라도 구분을 해야 살지. 이 녀석아 언제 밤에 잠 좀 잘래 으이?”
아버진 계속 내 앞에서 왔다갔다하시면서 ‘걱정이다… 걱정…’이라며 내 앞을 떠나질 못하고 계신다. 수심에 가득 찬 내 얼굴을 아버진 보고 계시고, 난 천진난만하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승욱이를 바라보고 있고…
새로 이사온 집은 세 집이 연결되어 있는 콘도이다. 우린 세 집 중에 가운데 집에 살기 때문에 승욱이가 한번 꿍하고 뛰면 세 집 다 흔들 흔들이다. 모두가 잠든 밤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그런데다가 장난감도 얌전히 가지고 놀면 다행인데 마음껏 두드리고, 던지고, 소리 나는 장난감을 죄다 틀어놓으니 시끄럽기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정말 엄마 말대로 우린 외딴 섬에 가서 살아야 한다.
오고가다가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를 만나면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려서 “어젯밤에 너무 시끄러우셨죠? 어구 우리 승욱이가 잠을 안자고 보초를 서요. 너무 죄송합니다. 지키고 앉아있는 데도 감당이 안 되요”라고 먼저 말을 건네면 언제나 웃으시면서 “처음엔 무슨 난리 난 줄 알았는데 이젠 적응이 돼가요. 애가 그러는 걸 어째요. 괜찮아요. 애 키우는 엄마가 더 힘들지…”라고 말씀을 해주신다.(어구, 이해 해주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 같았으면 정말 왕짜증 났을텐데…)
승욱이를 아침에 학교 보내면서 ‘사랑의 노트’에 새벽에 있었던 일을 적어보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승욱이가 밤낮을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했다.
경험 많은 선생님들이니 왠지 아는 방법이 여러 가지는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의 답장을 받아보았더니 선생님 말이 승욱이는 너무 양호한 편이라고 적어왔다. 보통 시각장애 아동이 있는 가정에선 밤에 집 나가기, 뜨거운 물 틀어놓기, 달리는 차에서 차 문 열기, 뜨거운 곳에 마구 달려들기… 거기에 밤낮을 구분 못하고 잠 안 자기, 괴성 지르기, 벽 두드리기 등등…
승욱이와 같은 반에 있는 J도 벌써 밤에 몇 번을 나가서 아예 현관문에 안전장치를 3개나 달았다고 했다. 어떤 아이는 잠자는 것 때문에 몇 년째 약을 먹는다고 했다.
엄마가 힘들더라도 언제나 규칙적인 생활을 항상 유지해 줘야 한다고 했다. 휴… 지금 이런 상황에 어떻게 승욱이에게 모든 것을 맞춰줄 수가 있을까?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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