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6-04-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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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이야기

“우리 애는 지난주 스케일링하고 봉을 박았어요”
“우리 아이도 크라운을 씌웠는데 포슬린으로 했더니 돈이 꽤 들더라구요”
“말도 마세요. 우리 맥스는 벌써 세 번째 깁스했어요. 뼈가 워낙 약해서 층계에서 좀 심하게 뛰어내려오면 꼭 골절되거나 부러지거든요”
“코코는 알러지가 심해서 어찌나 긁어대는지 식사 때마다 약 먹이는게 일이지요”
한 달에 한번 함께 와인을 마시는 나의 친구들은 와인을 좋아한다는 것 한가지 외에 거의 공통점이 없다. 나이도 각자 다른데다 종사하는 직업도 각양각색이고 개인적 신분 역시 유부녀, 이혼녀, 싱글 등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이 딱 한가지 있었으니, 나를 제외한 모두가 개를 키운다는 것이다. 개 키우는 것까진 좋은데 문제는 만나면 꼭 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고, 개 이야기의 특성은 할머니들의 손주 자랑보다 훨씬 심각한 중독성을 띄고 있어서 일단 시작하면 해도 해도 끝나지를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니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의 만남은 늘 ‘개판’이 돼버리는 것이다. 한 달에 한번 모임은 물론이요, 작년 봄 다같이 나파 밸리로 여행을 갔을 때는 2박3일이 쉬지 않고 ‘개판’이었다.
이야기를 듣노라면 이 놈들은 나보다 팔자가 좋은 것이 확실했다. 개 좋아하기로는 개띠인 나도 못 말리는 편인데, 오래전 내가 새끼 낳은 어미 진돗개에게 한달동안 사골국물 내서 미역국 끓여먹인 일 같은 것은 얘기 축에 끼지도 못한다.
1년에 한번씩 정기검진을 받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고, 스케일링할 때는 전신마취를 해야하므로 한번에 300달러가 드는 것이 보통이며, 백내장 녹내장 수술에 강아지 라식수술 전문의까지 있다는 정보들을 주고받는데 이걸 코미디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이야기를 나누는 자세들이 너무나 진지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조하연씨가 우리들을 샌타바바라의 별장으로 초대한 적이 있다. 다들 꿈에도 가보고 싶었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야단들이 났고, 토요일 아침 일찌감치 모여 네명씩 차를 타고 샌타바바라로 향했다.
한 30분쯤 갔을까? 우리 차에 개 두 마리 키우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이 다급한 목소리로 “개가 기절을 했다”고 알리는 전화였다. 놀란 친구는 동물병원으로 전화를 하였다. “저 코코와 맥스 엄만데요. 우리 코코가 기절을 했어요. 저희 남편이 지금 병원으로 데려가고 있으니까 제발 문 닫지 말아주세요” 좌불안석인 친구에게 우리는 괜찮을거라고, 병원가서 주사 맞고 약 먹으면 금방 나을거라고, 달래고 위로하며 목적지에 다다랐다.
그 날의 와인 파티는 유난히 맛있고, 즐겁고, 특별했다. 바닷가 파도가 바로 앞에서 철썩이는 식탁에 앉아 맛있는 음식과 와인들을 맛보면서 다들 너무 좋다고 끄응 끙~~ 코맹맹이 소리들을 해대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그때 또다시 울리는 전화벨 소리, 사색이 된 친구가 “뇌졸중이래”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어섰다. 저녁까지 근사하게 먹고 놀다가기로 작정들을 하였건만 훤한 대낮에 샌타바바라를 떠나왔던 것이다.
LA로 가고 있는데 또 전화가 왔다. 정밀진단을 해보니 뇌졸중이 아니라 ‘간질’같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동승했던 한의사 친구가 말했다. “개도 침 맞히면 증세가 훨씬 좋아져요. 개들이 신기하게도 침을 잘 맞던데…” 코코 엄마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개들을 데리고 한의사 친구의 오피스로 찾아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날 침을 맞고(정말 벌러덩 누워서 얌전하게 침을 맞더란다) 원기를 회복한 녀석들은 지금 탈없이 잘 지낸다고 친구는 속보를 전해왔다.
오늘 아침 또 다른 친구인 ‘잭’ 엄마가 서울 다녀왔노라고 안부전화를 해왔다. 평소에 잭은 삐치기를 잘 한다고, 보통 집에 들어가면 쏜살같이 달려나와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는데 밤에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면 나와보지도 않고, 가서 아는 체를 하여도 고개를 돌리고 본체만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잭이 안 삐쳤냐고 물었다.
“언니 집에 두고 갔더니 잘 지냈나봐. 얼굴만 보면 알지. 우리 잭은 표정이 얼마나 풍부한지 말이야. 꼭 영화배우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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