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엄마의 일기

2006-04-01 (토)
크게 작게
승욱이 가출사건(하)


경찰을 보는 순간 갑자기 얼음이 되어버렸다. 경찰에 나에게 말을 건네며 땡을 하는 순간 얼음에서 풀려났다. 그 시간이 5초… 입을 떡 벌리고 버벅벅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경찰은 혹시 너희 집에 애가 없어졌냐고 물었다. 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를 따라 오라고 손짓을 한다. 다리를 후들거리면서 계단을 간신히 내려갔다.
경찰은 아이가 길에 울고 있어서 이웃이 신고를 했고, 2시간 넘게 아이의 집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경찰을 따라 걸어가면서 미친 상상이 마구 들고 있다. 미국은 아동보호법이 엄하다는데, 이대로 내가 구금, 체포, 연행, 격리… 이런 상황이 오면 어쩌지? 침을 꼴딱 삼키며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어떡해요. 제가 잡혀가는 거까진 괜찮은데 집에 남겨지는 식구들은 어째요, 네? 하나님 어디 계세요…’
그때 지혜의 생각이 떠오른다. ‘솔직하자! 솔직!’ 난 걸어가면서(쨔식, 무진장 멀리도 걸어갔네…) 경찰에게 승욱이 이야기를 솔직히 했다. ‘우리아이는 지금 여섯살이고, 전혀 못 보고, 듣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다가 밤낮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매일 밤을 지샌다. 이 동네에 이사온 지는 3주정도 되었고, 어떻게 잠겨있던 현관문을 열고 나갔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직 현관문은 열지 못하는데 어떻게 된건지 정말 모르겠다. 내가 2시까지 애를 지키고 있었는데, 깜박 잠이 들었다. 경찰은 아무 말도 없이 내 얘기를 듣고 있다’
경찰을 따라가며 앞을 보니 ‘아…’ 우리동네 ‘다이아몬드 바’ 경찰 차는 다 와있다. 번쩍번쩍 경찰차가 너무 많다보니 대낮같이 밝다. 경찰 차 6대에 경찰관 13명 출동… 내가 나타나자 경찰들이 뺑그르르 내 주변으로 모여든다. (‘걱정마세요. 저 안 도망가요!’)
난 승욱이를 찾았다. 우리 집으로부터 9번째 우측으로 있는 집에 사는 한국부부가 승욱이를 2시간 넘게 안고 있었다. 난 승욱이를 받아 안았다. 너무 담담하게…
사건의 요지는 이랬다. 내가 잠이 들자마자 승욱이는 위층으로 올라갔고, 더듬거리며 걸어간 곳이 현관문이었다. 잠겨있던 현관문을 요리조리 돌리다가 문이 덜컥 열렸고 밖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유유히 걷다보니 너무 멀리 걸어가게 되었고, 무서운 생각에 남의 집 마당 잔디밭에 누워 울게된 것을 그 집주인인 중국여자가 보고 경찰에 신고를 하게된 것이다. 다행히 중국여자의 소란 피우는 소리를 옆집 한국부부가 듣게 되었고 함께 나와서 승욱이를 담요에 싸고 안고 있었다.
처음 경찰차 한대가 도착해서 한집 한집을 다니다 보니 너무 시간이 걸렸고, 그래서 출동한 경찰차가 6대가 되었다고 했다. 난 한국부부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런데 경찰에 신고했다던 중국여자는 혼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고, 경찰들이랑 한국부부는 다 가만히 있는데 자기가 흥분해서 난리 난리가 났다.
“만약 너희 아이가 수영장으로 걸어갔으면 어쨌겠니, 손목에 이름표를 붙여줘야 했는데, 몇 시간을 잠도 못 자고 경찰들이랑 우리가 이게 뭐니, 애가 없어진지도 모르고 있었던게 사실이니…” 난 엄마인 죄로 무조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우리 엄마도 덩달아 내 옆에서 머리를 숙이고…
난 경찰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승욱이는 날 만난 반가움과 서러움에 꺼이꺼이 운다. 우리집 현관 벨을 눌렸던 경찰이 제일 높은 사람인가보다. 간단히 나의 이름과 생년월일만 묻고 다들 철수시킨다. 앞으로 애 잘 보고, 잘 키우라고 하고들 다들 흩어지기 시작했다.
꽁꽁 얼어붙은 승욱이의 몸이 내가 안고 있으니 서서히 풀린다. 경찰을 따라오면서 얼음장같이 얼어버린 내 심장도 서서히 내 몸의 온도로 되돌아오고 있다. 그렇게 혹독한 사건을 치르고 또 가슴을 쓸어내리며 승욱아, 이승욱… 이 녀석아 도대체 너까지 왜 이러냐…
건강하게 아이를 찾은 것에 감사해야 하는데 모든 상황이 날 고통스럽게 한다. 오늘 우리 아들이 왜이리 부담스럽지? 오늘 내 이름이 ‘요주의 인물’로 우리동네 경찰서에 큼지막하게 올랐겠다. 휴… 우리 아들 때문에 자꾸 유명해지는구나.
승욱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아들이 까르르 웃는다. ‘좋냐? 엄마 안 붙잡혀가서 좋아? 에구에구 이 녀석…’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이 모든 것이 말이다.

김 민 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