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6-03-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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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내 모습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배우가 주연한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거울에서 내 모습을 보았을 때, 내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깜짝 놀라는 일 말이다.
미장원에 머리하러 가서 가운을 입고 젖은 머리로 거울 앞 의자에 앉았을 때, 내 얼굴이 너무 못생겨 보여서 무안한 일도 우리는 가끔씩 경험한다.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한국사람이나 동양사람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그때는 백화점에서 샤핑하면서 벽에 붙은 거울을 보다가도 혼자 놀라는 일이 많았다. 주위에 보이는 샤핑객들이며 세일즈 점원들이 모두 백인여자들이라 그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다보면 나 스스로 그들과 비슷한 무리처럼 느껴지는데 어느 순간 거울을 보면 너무나 다른 얼굴, 누리끼리하고 넙대대한 얼굴에 작은 눈이 그렇게 이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난 주말 이승철 콘서트에 갔다. 6,000여 좌석이 꽉 찼는데 관객 대다수가 20대에서 30대의 여성들이었다. 화장실에 갔더니 대형공연장의 여자화장실이 늘 그렇듯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줄서서 계속 들어가고 나오는 한국여자들을 요리조리 구경하고 비교하면서 점수를 매겼다.
‘쟤는 화장이 왜 저래, 쟤는 머리가 희한하네, 저렇게 벗고 다니면 춥지도 않나, 저 아가씨는 신경 좀 썼는데 매치가 안됐구먼, 저 여잔 웬 정장, 클래식 콘서트라도 왔나? 요즘엔 누더기 패션이 유행인가봐, 그래도 내 차림이 제일 무난한거 같애…’
멋쟁이를 보면 째려보기도 하고, 나보다 못해 보이면 혀를 차기도 하고, 그러다가 차례가 되어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보다가 나는 또 깜짝 놀랐다. 거울 속에 내가 없는 것이었다.
어? 정숙희 어디 갔지? 놀라서 두리번두리번 하는데 웬 낯선 아주머니 한사람이 거울 속에서 똑같이 두리번두리번 하고 있다. 그 아주머니는 내가 여태껏 비교하며 채점하던 여자들과 비교되기는커녕 비슷도 하지 않았다.
50을 바라보는 중년여성이, 저 혼자 20~30대 아가씨들의 대열에 서서 얘는 어떠니 쟤는 어떠니 하며 비웃고 있었으니, 코미디라고 하기엔 너무도 슬픈 현실, 걔들은 무슨 옷을 어떻게 입어도 예쁜 나이 아니던가 말이다.
몇 년전부터 나는 사진이 잘 안 나온다고 계속 불평을 해댔다. 나는 원래 사진발이 좋은 편이라 대충 스냅 사진을 찍어도 봐줄 만하고, 한창 돌아다니던 시절에 사진기자들이 취재하는 모습을 가끔 찍어주면 좋아라 벽에 붙여놓을 만큼 잘 나오곤 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언젠가부터 도무지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식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어쩌다 사진 찍힐 일이 있으면 신경 안 쓰는 척 하면서도 가장 잘 나올만한 각도와 표정과 미소에 신경 쓰면서 포즈를 취하곤 했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면 어머나 이게 뭐야, 당장 삭제해버려야 하는, 사진 전체를 망치는 한 아줌마가 떡 웃고 있는 것이다.
한달 쯤 전이었나 보다. 얌전한 독사진 한 장이 필요해 화장하고 머리하고 전문 스튜디오에 가서 갖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얼마 후 사진들이 나왔는데, 오 마이 갓! CD에 담긴 수십 장의 사진 중 단 한 장도 맘에 드는 사진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당장에 모두 다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이상한 모습이었다.
늦되고 철없는 이 아줌마,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 모습은 늙어가는데 내 눈은 늙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내 눈은, 내 마음은, 내 기억은, 현재의 모습을 전혀 모르는 채, 젊었을 때의 모습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사진들 속에서 웃고 있던 앳된 얼굴, 그 모습이 아니면 모두 ‘잘 안 나온 사진’이 돼버리는 것이다.
거울을 볼 때면 보이지 않는 모습이 사진에는 왜 담기는 것일까?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 정직한 것일까?
진짜 내 모습이 내 눈에 바로 보이는 것은 언제쯤일까? 간신히 중년여인의 모습에 적응이 될 때쯤, 아마 나는 노인이 되어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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