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3-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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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이 가출사건 (상)


오빠네 식구들과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갔다.

옛말에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잠깐 왔다간 식구들의 휑한 자리가 괜히 아쉽고 구석구석에 그리움이 생긴다. 이렇게 힘들땐 그래도 가족이 함께 있으면 힘이 되련만 현실이 그렇게 하기가 힘든 상황이니 모든 것을 그저 내 몫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버지가 항암제를 맞고 계시다. 항암제를 맞으면 구토와 머리 빠짐 등 여러 가지로 힘이 든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너무나도 잘 견디고 계시다. 역시 우리 아버진 ‘의지의 한국인’이신 것 같다.
그러나 저러나 요즘 최고의 문제는 우리 승욱이다. 녀석의 잠자는 시간은 언제나 자기 맘대로이기에 계속해서 난 승욱이와 밤을 지샌다. 그리고 밤마다 먹거리로 치킨 너겟만을 먹어댄다. 그런데 치킨 너겟의 기름냄새를 아버지가 가장 역겨워 하시는 게 너무 죄송스럽다. 녀석이 다른 것은 안 먹고 치킨 너겟만 먹으니 밖에서 만들어서 가지고 들어올 수도 없고 창문을 열고 후드를 틀어도 아버지가 냄새 때문에 주무시다가도 일어나실 정도로 아주 힘이 드신 것 같다. 승욱이의 잠자는 것과 먹는 것, 그것만이라도 해결이 되면 훨씬 수월할텐데…
그래도 밤에 잠 안 자고 생활한 것이 6년이 넘으니 내 몸도 서서히 적응을 하는 것 같다. 지난번 아버지 일로 남편이 왔을 때 승욱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일찍 침대에 누웠지만, 몸은 자는데 머리와 귀는 열려 있어서 승욱이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것을 보면 난 정말 승욱이 엄마하기 위해 태어난 여자인 것에 분명한 것 같다.
이젠 제법 똑똑해졌는지 욕조 물트는 것은 선수가 다 되었다. 근데 주로 뜨거운 물만 틀기 때문에 언제나 지키고 있어야 한다. 밤새 지키고 있다가 깜빡 잠이라도 들라치면 여지없이 일을 저질러 놓기에 언제나 가슴이 조마조마다…
회사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왔더니 이민국에서 큰 봉투가 3개 와 있다. 열어보니 영주권 신청한 것에 대한 인터뷰를 한다는 편지 내용이었다. 2005년 6월23일에 인터뷰… 4년 넘게 기다려온 영주권에 대한 인터뷰를 한다는데 왜 이리 가슴이 떨리는지… 다른 사람들은 인터뷰 없이 영주권을 잘도 받는데 왜 우린 인터뷰를 한다는건지… 뭐가 잘못된 것일까? 여러가지로 또 걱정이 생겼다.
아… 왜 이리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지 모르겠다. 숨쉴 틈을 주지 않고 다가오는 일들로 언제나 어깨에 벽돌 100장을 올려놓고 사는 것 같다.
영주권 인터뷰 날짜가 잡히고 난 부지런히 준비할 서류를 준비하느라고 낮엔 변호사 사무실로, 병원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아버지가 항암제를 맞으시는 날엔 새벽같이 아버질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회사로 갔다가 오후에 아버지 모시려 병원에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돌아온 후에 나머지 회사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밤새 승욱이와 씨름을 한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다. 승욱이는 뭐가 신이 났는지 내 몸을 놀이터 삼아 이리저리 오르락내리락 신나게 놀고 있다. 세상에 제일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고, 너무 졸리다. 아니 미치겠다. 차라리 못 먹는 고통이 낫겠다 싶다. 잠 못 자는 고통은 진짜 정신이 핑하고 돌 지경이다.
낮에 들이킨 커피의 카페인도 다 빠져나간 시간인지 잠깐만 벽에 기대에 있겠다는 내 몸이 눈을 떠보니 침대다. 그것도 엄마가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인 것이다.
“민아야~~ 일어나 봐~~ 승욱이가 없어졌다. 민아야~~ 자니?”
순간 몸이 스프링처럼 띠옹~하고 침대에서 부~웅 떠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뭐? 승욱이가 없다고? ‘아… 이 녀석 또 어디 숨어 있는거야’
엄마가 새벽기도를 가시려고 5시에 일어나셨는데 분명히 들려야하는 승욱이 소리가 안 나서 이곳저것을 찾고 계셨던 거다. 아래층 위층을 다 뒤져도 애가 없다는 거다.
나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엄마! 승욱이 어디갔어?”
엄마는 울먹이면서 “몰라, 집에는 없어…”
그 순간 현관 벨이 ‘딩동’ 하고 울린다. 엄마와 난 계단에 서 있다가 현관 쪽으로 가니 현관문이 열려있다. 그리고 그곳에 백인경찰이 떡하니 서있는 것이…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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