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3-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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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한국에서 오빠네 식구와 남편이 함께 미국으로 왔다. 공항에 내린 오빠 식구들과 남편은 바로 아버지가 계신 병원으로 갔다. 오빠도 비행기에서 한숨도 못 자고 왔는지 눈에 흰 동자가 거의 없다. 남편도 올케도 마찬가지다.
병실에 어린 조카들은 들어갈 수가 없어서 난 밖에서 아이들을 안고 있었다. 오빠와 올케 그리고 남편이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아버지의 반가운 눈빛을 보았다. 진통이 너무 심해 얼굴이 반쪽이 되어버린 아버지 얼굴에 미소가 한 가득이다. 아버진 자식들을 만나 웃으시는데 달려온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 모습에 눈물을 펑펑 쏟고 있다. 오빠와 올케와 남편은 아버지를 붙잡고 “아버지, 죄송해요.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아버지도 이를 악물고 참으시던 눈물을 결국 보이셨다.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기침이 심해서 말씀도 많이 하시지 못하는 아버지가 안간힘을 쓰고 말씀을 하신다. “난 괜찮다. 곧 일어날 꺼야. 비행기 타고 오느라 피곤할 텐데 집에 가서 얼른 쉬어라” 오빠는 자신이 병원에 남아서 아버질 간병한다고 모두 집으로 가라고 했다. 아버진 모두 가라했지만 오빠가 옆에 있겠다고 하니 말리지 않으시는 걸 보니 은근히 그리고 아주 많이 그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가족 모두가 함께 모였지만 침울하다. 가족들이 다 모여 있는데 괜히 눈치가 보인다. 모든 것이 내 탓인 것 같아서 식구들의 얼굴을 똑바로 보질 못하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날 아주 괴롭게 한다. 승욱이를 낳지 않았다면… 우리가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한국으로 돌아갔었으면…
하루 이틀 지나면서 아버지의 병세가 점점 호전되어 가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좋은 항암제를 찾아서 곧 치료해 보겠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리고 곧 퇴원하시게 되었다. 아버지가 집에 오시는 날 산소호흡기 통이며 여러 가지 병원기구들과 함께 오셨지만 걸어서 오실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린 감사 그저 감사했다.
아버지가 집에 오시니 처음으로 집에서 웃음소리가 난다. 아버지도 여섯 명의 손자손녀들의 재롱과 자식들의 든든함에 아픈 것도 잊으신 채 얼굴에 미소가 가득이다. 아, 그냥 다들 휴가여서 이렇게 모여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 제발 기적을 보여주세요. 그냥 잠시 민방위훈련 이었다고 말해주세요.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추길…
서서히 아버지가 회복하고 계시다. 오빠네 식구들도, 남편도 한국으로 돌아갈 날짜가 다가온다. 아버지가 어찌 되시는 줄 알고 너무 급하게 휴가를 받아온 터라 길게 있지도 못하고 다들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눈치를 보니 아버지도 나도 다들 돌아간 후에 또다시 나와 아버지만 남게 되는 것이 점점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버지가 아프신 이후로, 아니 승욱이가 와우이식 수술을 받은 이후로 난 잠이란 걸 편하게 자보질 못했다. 승욱이의 잠자는 시간이 완전히 바뀌는 바람에 밤에는 승욱이를 보고, 또 낮에는 회사 일에 오후에는 아버지 병원으로… 가족들이 와 있는 틈에 잠시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긴 했지만 또다시 철인 3종 경기를 매일같이 뛸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지친다.
오빠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나에게 “민아야. 너가 너무 힘들었겠다. 그리고 앞으로 많이 힘들겠다. 언제나 전화하면 잘 있다고 말해서 오빤 너가 정말 언제나 그랬듯이 씩씩하고 밝게 잘 있는 줄만 알고 미국으로 오는 내내 너를 참 이해할 수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너의 생활 그리고 승욱이 키우는 모습을 본 오빠가 할말이 없다. 너가 아버질 힘들게 했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했던 오빠가 참 부끄럽다. 다들 정말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는데 말이야. 하나님이 선하고 선하신 길로만 우릴 인도하신 것을 오빠가 잠시 잊었어”
난 오빠에게 “그래 최선을 다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결과가 이래서 내가 너무 죄책감이 들어. 마치 아버지가 암에 걸리신 게 나 때문인 것 같아서 괴로워 죽겠어”
오빠가 진심 어린 위로를 해준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정한 날짜에 오고 정한 날짜에 가는 거라고… 아버지가 회복 중에 계시니 분명히 좋아지실 거라는 믿음을 잃지 말자고… 그리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승욱이만 유독 챙기시고, 사랑하시던 아버질 우리 형제들은 언제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손주 여섯 중에 승욱인 넘버원 자리를 한번도 내준 적이 없다. 그만큼 승욱인 아버지에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랬던 아버지가 편찮으시니 괜히 내가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빨리 아버지가 완쾌해서 나의 모든 무거운 짐과 미안함이 떨쳐지길 기도한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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