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계를 놀라게 한 스웨덴의 대변신

2006-03-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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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놀라게 한 스웨덴의 대변신

스톡홀름의 명동격인 감라스탠 거리에 자리잡은 스웨덴 왕궁. 관광객들이 의장대의 사열식을 구경하기 위해 궁전광장 앞에 몰려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스웨덴의 대변신

구스타프 바사왕

호전적인 국민에서 평화주의자로,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나라로

바사 대왕의 후예들

나라마다 상징적인 영웅이 있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영국은 넬슨 제독, 러시아는 피터 대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한국은 이순신이다. 스웨덴에도 전설적인 영웅이 있다. 구스타프 바사(사진)라는 왕이다.
스웨덴을 여행하노라면 가는 곳마다 ‘바사’라는 단어와 부딪친다. 바사 거리, 바사 박물관, 바사 대학, 바사 궁전, 바사 예술전당 등 그의 이름을 딴 것이 수없이 많다. 바사(VASA, 1496~1560))는 한국의 광개토왕과 세종대왕을 섞어놓은 개념의 인물이다. 영토를 팽창하고 스웨덴을 덴마크로부터 독립시켰으며 예술 진흥을 꾀해 바이킹족이라는 야만인 이미지를 벗겨놓은 왕이다. 무엇보다 가톨릭 국가였던 스웨덴을 프로테스탄트로 바꾸어 놓는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바사 왕조는 아들대에 이르러 핀란드를 합병하고 러시아와 싸워 이겼으며 폴란드를 점령하는 등 하늘을 찌르는 기를 보였다. 그의 손자 구스타프 아돌프는 얼마나 용맹했던지 당시 유럽의 어린이들이 울면 부모들이 “구스타프가 온다”고 겁주어 울음을 그치게 했다고 한다.
바사 이전의 스웨덴은 덴마크의 속국이었다. 바사가 스웨덴을 어떻게 독립시켰는가는 하나의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스웨덴의 귀족들이 독립운동을 추진하자 덴마크의 크리스티앙 왕은 스톡홀름으로 쳐들어가 화해의 제스처로 82명의 스웨덴 왕족을 연회에 초대한 후 파티 현장에서 살육하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이것이 유럽사에서 유명한 ‘스톡홀름 대학살’ 사건이다. 바사의 아버지와 형제들도 모두 피살되었다. 이때 덴마크에 유학 와 있던 왕자 신분의 바사는 극적인 탈출에 성공, 스웨덴에 잠입하여 민병을 모은 후 덴마크군을 스웨덴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바사가 덴마크를 도망해 나올 때 스웨덴 국민들이 목숨을 걸고 도와 스키로 천리를 달렸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스웨덴에서는 해마다 3월이면 300킬로를 달리는 바사 장거리 스키대회가 열리는데 세계에서 1만여명의 스키어들이 몰려오는 성황을 이룬다.
그러나 바사 왕조 말년에 이변이 일어났다. 독신인 크리스티나 여왕이 갑자기 하야를 선언하면서 가톨릭으로 개종, 수녀가 되어버렸다. 이때부터 바사 왕조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나폴레옹의 참모인 장 밥티스 베르나도 원수가 파견되어 프랑스의 신탁통치가 잠시 계속되었다. 그러나 베르나도 원수는 프랑스에 반기를 들고 스웨덴을 다시 독립시켰으며 국민은 그를 스웨덴 왕(칼 14세)으로 추대했다. 그러니까 오늘의 구스타프 스웨덴 왕은 바사의 후예가 아니라 프랑스계인 칼 14세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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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구스타프왕과 실비아 왕비. 상징적인 국가원수일 뿐이다. (왕궁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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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쪽에서 내다본 스톡홀름의 중심가. 관공서 건물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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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의장대 기마병. 스웨덴군은 한때 유럽 최강을 자랑 했었다.


스웨덴은 러시아와의 30년 전쟁, 프러시아, 폴란드, 덴마크와의 전쟁으로 지쳐 나라가 피폐해졌다. 먹고살기 힘들어진 국민들사이에서 미국 이민 바람이 불어 100여만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전쟁에 진절머리가 난 스웨덴 국민들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선언하게 되었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피한 것이 스웨덴이 번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왕조의 지긋지긋한 독재에 진절머리를 낸 국민들이 사회민주 체제를 택하여 오늘의 사회복지 국가를 이룩한 것은 ‘스웨덴의 전화위복’이며 아이러니다. 이 모든 것이 스웨덴 역사에서 불과 100년 사이에 일어난 기적이다.



<이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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