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3-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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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지 15시간만에 입원실로 아버지가 옮길 수 있었다.
아버지도 나도 기진맥진이다. 병원에 아파서 온 환자가 병이 더 악화될 지경이다. 입원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창 밖을 보니 동이 트려는지 새벽 미명이 흐릿하게 보인다. 아버진 집에 얼른 가서 한시간이라도 눈을 붙이고 회사를 가라고 하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
여러 가지 간호사의 질문에 내가 아버지 곁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우두커니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버진 “민아야! 내가 니 안 낳았으면 우쨌으꼬?”라고 물으신다. 난 “나 안 낳으면 지금 아부지 혼자 여기 있었겠지…” 아버진 “그쟈~ 니 안 낳으믄 클날 쁜 했겠제” 난 “치… 내가 아들이 아니어서 무진장 섭섭했었다면서…” 아버진 “딸이 났네, 딸이…” 난 “치… 거짓말, 아부지 아프니깐 오빠만 찾더라…” 아버진 “내가! 내가 은제(언제)?”
아버진 내가 옆에 있는 것이 든든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신 듯하다. 말로 표현은 안 하시지만 난 아버지의 말속에서 알 수가 있다. 참, 나와 아버진 지지리도 안 맞는 사람들이다. 언제나 의견충돌에 대화 속에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었다. 언제나 내가 하는 일에 못마땅해 하셨다. 결혼한 딸을 언제나 애처럼 생각하시고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시던 아버지였다.
아버진 경상도 남자답게 목소리가 아주 크시다. 언제나 나를 부를 땐 동네가 떠내려가듯이 부르셨다. 교회에서도 밖에서도 어디에서도 우리 아버지 소리가 제일 컸다. 같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서 자리가 비면 아버진 큰소리로 날 부르셨다. “민아야~~ 여기 자리 비었다 빨리 와서 앉거라!!” 그 사람들 많은 곳에서 내 이름을 그리 크게 부르시다니… 아이구 창피하여라…
승욱이를 낳고 아버진 내가 혹시나 나쁜 생각을 할까봐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를 하시고, 수시로 연락도 없이 불쑥 불쑥 우리 집으로 찾아오셨다. 결국은 나를 아버지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오늘까지 나의 보호자로 계시는 거다.
승욱이와 내가 가는 곳은 언제나 아버지가 계셨다. 언제나 그림자처럼 그리고 목소리는 여전히 크게… 어느 땐 그것이 너무 큰 나의 구속이기도 해서 숨이 턱턱 막히기도 했다.
아버지의 독특한 사랑 방식이 때론 너무 싫었다고 하면 내가 나쁜 딸일까?
아버지와 또 티격태격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시간이 새벽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난 더 있다가는 애들 학교도 늦게 보내게 될 것 같아서 아버지에게 가야겠다고 했다. 아버지도 늦겠다고 빨리 가라고 하셨다. 간호사에게 급한 일 있으면 나에게 연락해 달라고 연락처를 남겨두고 병실을 막 나오는데 아버지가 나를 향해 “민아야~ 고맙데이… 니가 같이 있어 줘서 아부지가 하나도 안 아팠데이…”라고 역시나 큰소리로 말씀하신다.
뒤를 돌아보면 또 약한 모습을 보일 것 같아서 “저녁때 다시 올께요~~”라고, 아버지 딸답게 역시나 큰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렇게 아파하시던 통증이 나하고 같이 있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건데 그것이 우리 아버지만의 사랑 표현인 것을 이제야 이해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30년이 넘어서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 바보가 말이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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