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각장애인 김선태 목사, 희망의 메시지 들고 미주 방문
“현행법상 시각장애인은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
통보를 받은 김선태 청년은 문교부를 찾았다. 32번이나 찾았다.
눈물과 애원으로, 그리고 간곡한 호소로 문을 두드렸다. 그때마다 문교부직원들이 달려와 범죄자처럼 끌고 밖으로 내몰았다.
가슴깊이 칼을 품고 사생 결단하려는 심정으로 담당국장을 찾아갔다. 칼을 뽑아들고 국장과 담판을 벌였다. 그리고 결국 쇠문은 열렸다.
그 일이 신문에 대서 특필되면서 김군은 일약 유명인사(?)가 됐고 버스 차장도 무임 승차를 시켜줄 정도가 얼굴이 알려졌다.
이후 김 군은 대입 국가고사를 치르고 숭실대학 철학과에 입학했고 장로회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를, 시카고 맥코믹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 당시 폭탄이 터져 10살 때부터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김선태 목사(사진)가 겪은 일이다. 수많은 ‘인간 승리’ 스토리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김 목사가 오는 3월3일(금)부터 5일(일)까지 리치몬드한인장로교회(강형길 목사)에서 부흥회를 인도한다.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사흘간 열리는 부흥회의 총주제다.
매 집회의 제목도 김 목사의 인생 체험을 그대로 말해준다. ‘만남에서 운명이 바뀐 사람’ ‘예수안에서 평강을 누리는 사람’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 ‘은혜를 받고 깨달은 사람’’....
숭실대학에서 자랑스런 숭실인의 한 명으로 선정해 엮은 그의 전기는 강단에서 학생들을 꾸짖는 그의 설교로 시작하고 있다.
“주변의 환경이 자신을 얽어매고 묶어도 뚫고 일어나는 것이 인생의 맛이고 또 멋이라고. 그래야 삶이 아름답지 않느냐고. 눈 먼 놈도 이렇게 뛰는데 건강한 젊은 놈들이 이게 뭐야. 입만 가지고 빈둥빈둥 놀면서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누가 만들어줄 것을 기다려!”
그는 자신의 설교처럼 밝은 세상을 만드는데 혼신을 다했다.
점자 성경을 보급했고 장학사업을 실시했다. 1982년에는 실로암 안과병원을, 1988년에는 실로암복지재단을 세웠다.
실로암 안과병원 개원 20주년을 맞은 해부터는 2.2.2 운동을 시작했다. 설립 20주년에, 2천명에게 개안 수술을 해주고 2만명에게 무료안과 진료로 실명을 예방시킨다는 목적을 담고 있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신다면 저와 같이 앞 못보는 사람들을 위해 살겠습니다.”
전란이 한창이던 당시의 상상할 수 없는 역경을 기도로 이겨냈던 시각장애인 소년은 이제 존경 받는 선지자가 되어 ‘믿는 자들에게 희망의 빛줄기를 던져주는’ 메시지를 미주 한인들에게 들려준다.
문의 (804)231-6192
<이병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