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육신 아버지 찾는 대신 영혼의 아버지 찾았죠”

2006-02-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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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특수선교상 수상자 로버트 박 목사

대문호 펄 벅 여사 손잡고
17세때 아빠 찾아 미국에
유수 은행 지점장 올라
뒤늦게 소명 깨닫고 목회
쿠바서 30개 교회 개척

미국 태생의 노벨상 수상작가로 우리에게 ‘대지’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 펄 S. 벅(1892~1973)은 제 2차 세계대전 뒤 미군 병사들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남기고 간 사생아들을 돕기 위해 펄 S. 벅 재단을 세웠다.
펄 벅은 1967년 수입의 대부분인 700만달러가 넘는 돈을 이 재단에 희사했으며, 이는 한국의 한 17세 소년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미국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어주었다.
미 육군 아버지와 8군 통역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소년은 펄 벅의 손에 이끌려 말로만 들었던 아버지의 고향 필라델피아에 발을 내딛게 되고 이후 펄 벅이 눈감는 날까지 그녀의 집에서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온 같은 재단의 수혜를 받은 혼혈인들과 함께 지냈다.
이 소년은 이후 미 유수 은행인 뱅크원 휴스턴 지사장까지 오르며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90년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고 신학대에 진학, 현재 휴스턴의 뉴라이프침례교회에서 한인들을 위해 목회를 펼치고 있다.
로버트 박(한국명 박철순) 목사.
“용산고등학교 졸업반 때 펄 벅 여사를 만나 뵀는데 이듬해 연세대에 진학 후 미국에 같이 가자고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통제가 심한 시절이라 군대를 갔다 오지 않으면 미국에 가는 것 자체를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죠. 펄 벅 여사에게 ‘3년만 기다려주세요’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평생소원이었으니까요. 그 다음 일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모르지만 제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가슴 뛰는 장면은 제 손에 놓인 미국 여권과 비행기 표였습니다”
박 목사에게 펄 벅 여사는 ‘세계 최고의 영어선생님’이었다. “한국인이 나보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았을까 싶을 정도로 한국과 우리 민족에 대해 극진한 애정과 해박한 지식을 지녔다”고 회상한 그는 실제로 펄 벅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살아있는 갈대(The Living Reed)’는 표지 배경에 아리랑 가사가 깔려있음을 지적했다. 구한말부터 1945년 해방되던 해까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 가족 4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의 집필을 위해 펄 벅은 한국을 방문해 2여 년 동안 치밀한 고증작업을 거쳤으며, 미국과 영국의 유수한 언론에서 ‘대지’ 이후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박 목사는 한국에서 겪은 혼혈인의 설움을 뒤로 하고 아버지를 찾고 싶은 마음 하나로 미국에 왔지만 아들이 혹시나 상처를 받을까 걱정한 어머니는 끝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미국에 왔고 성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결국 하나님이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는 박 목사는 “육신의 아버지를 찾는 대신 영혼의 아버지를 위해 평생 헌신하겠습니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지난 30일 예수커뮤니티선교회(JIM·대표 장기용 선교사)가 주최한 ‘2005년 제 1회 크리스천 커뮤니티 빛과 소금 어워드’의 특수선교상 수상자로 선정돼 LA를 방문했다.
그는 96년부터 쿠바지역에서 사역하며 30개 교회를 개척하고 12개 신학교를 건립하는 등 미전도 지역 2세 사역과 선교를 위해 땀 흘려왔다.

<신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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