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6.25 참전 혈맹의 나라 이젠 한인이 도울 차례

2006-03-08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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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획] 세계적 구호기관 월드비전 ‘에티오피아’ 개발사업장을 가다 ?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서 운전을 하기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자동차가 많고 길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신호 대기 때문에 서있다 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여기 저기서 걸인들이 나타나 손을 내민다.
한 두 번이면 좋을텐데 차가 설 때마다 그런 상황이면 곤란해진다. 나중에는 마땅히 시선을 둘 곳이 없어 난감한 생각이 든다.
도심 건물들이 일부를 제외하고 ‘수도’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초라하기 그지없어 여행객들은 쉽게 실망한다.
통계에 의하면 아디스 아바바의 인구가 400만이라는데 거리를 배회하는 어린이들만 10여만명이 된다.
11월 28일 월요일. 전날 외국인들이 많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 월드비전 비전 트립팀은 이날 아침 ‘도시(Urban) ADP’ 본부를 찾았다.
메데네키아 시사이 디렉터를 비롯한 스탭들이 반가이 일행을 맞았다. 저소득층 거주 지역 한 복판에 사무실을 둔 월드비전 에티오피아 ‘도시(Urban) ADP’가 관할하는 곳은 10개의 행정 구역 가운데 굴렐레(Gulele), 리데타(Lideta) 등 두 지역. 50만이 채 안되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이나 하찮은 물건을 교환해서, 혹은 땔감을 팔아서 근근히 살아간다. 직물을 짜거나 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월드비전 ‘Urban ADP’는 HIV/AIDS 예방, 청년 실업 해결, 여성 노동력 활용, 위생 개선, 소셜 서비스 확충 등을 도시 빈민들이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들로 꼽고 있다.
아디스 아바바 ADP는 영국 월드비전과 한국 월드비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원금 비율로 보면 영국이 전체의 78.6%를 차지하고 한국은 21.4%. 영국 월드비전의 2006년 후원 액수를 보면 자체 프로젝트 기금 24만8,000달러, HIV/AIDS 예방 프로그램 9만5,000달러, Urban ministry 2만4,600달러 등 총 36만7,600달러, 한국 월드비전이 ‘코리아 빌리지’라는 이름 아래 지원하는 금액은 10만달러였다. 또 1,000명의 아이들이 한인들의 온정으로 생계를 지원받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키워가고 있었다.
ADP 사무실 벽에 빼곡이 걸려있는 한국 월드비전 후원자들의 사진들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간단한 브리핑을 들은 일행은 ‘ADP’ 현장을 몇 군데 둘러 보기로 했다.
화창한 날씨 속에 거리는 인파로 넘쳤고 도로 한 복판에 거적을 깔고 누워있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먼저 찾아간 곳은 여성들이 조그마한 가건물에서 영업하는 찻집. 10여명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생활전선에 뛰어든 여성들이 월드비전의 도움으로 간단한 차 원료를 제공받아 팔고 있었다. 비즈니스는 공동 판매해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었는데 한 관계자는 “적은 수입이지만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냥 자리를 뜰 수 없어 비전 트립 일행 누군가가 얼마의 돈을 내놓자 환호성이 터졌다.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는 소년 가장 집을 찾았다. 타리케(18), 마르코스(7) 형제가 살고 있는 집은 지저분한 시장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부모 없이 한 평 조금 넘는 방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어렵게 살고 있었지만 다행이 이들 가슴 속에서 꿈이 영글어 가고 있었다. 현재 9학년인 형은 나이에 비해 한참 학업이 늦은 셈. 그러나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싶다”며 크고 맑은 눈망울로 또렷이 대답했다.
미티쿠 아가우(30), 테스파타쉬 샤게(24) 부부는 아이들이 신는 샌들을 만드는 기술자다.
작은 골방에서 만들어지는 샌들은 한 켤레에 12비르(birr)에 팔리는데 원가는 8 비르 정도. 일주일에 50개 정도를 판다니 약 24달러 정도를 버는 꼴이다. 아가우씨 부부는 방문객들의 요청에 따라 샌들 제작 시범을 보였는데 매우 능숙했다.

‘Korea Village’는 유엔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6034명의 셀라시에 황제 친위대 병사들과 가족들을 위해 황제가 특별히 마련해준 마을이다. 소위 ‘녹읍’이다. 이들 가운데 목숨을 잃은 희생자는 124명이다. 에티오피아는 이처럼 역사적으로 한국과 혈맹 관계에 있는 나라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에티오피아인들은 한국인을 늘 따뜻하게 대하는 인상이었고 자부심이 엿보였다.
참전 용사들은 자신들이 받는 연금의 일부를 모아 한국 고아들을 도와주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월드비전은 이들의 사랑에 보답해 ‘코리아 빌리지’ 건설 당시 160만달러를 지원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코리아 빌리지 초입에는 에티오피아 글과 한글로 된 팻말이 붙어있었다.
‘이 마을은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야기된 한국전에 유엔 헌장 집단 안보 조항에 따라 참전했던 KAGEW 부대원들이 귀국 정착함으로써 한국마을로 불려지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역전의 용사들은 얼마 남아있지 않았는데 웃는 얼굴로 미국서 온 한인들을 맞아 주는 노인들의 얼굴을 뒤덮은 흰 수염과 머리카락이 검은 피부와 묘하게 대조됐다.
노인들은 어눌한 말투로 열심히 젊은 날의 기억들을 떠올렸고 방문객들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정에 이끌려 덥석 이들을 안았다. 특별한 설명도 자세한 통역도 필요없었다.
함석으로 벽을 두른 공장 안에서는 아낙들이 한국 여인네처럼 베틀로 양탄자를 짜고 있었는데 거친 실로 짜는 양탄자는 고급 품질에 익숙한 사람들의 눈에 조악하고 엉성해 보이는 수준이었지만 너도 나도 몇 개씩 집어들고 값을 지불했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은 아직도 ‘홀리 트리니티 교회’ 지하실 안에 묻혀 있다. 황제의 총애를 받다가 이역 땅에서 산화한 친위대의 영령들은 한인들의 가슴 속에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보은’과 애틋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후원문의 (866)625-1950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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