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억의 명화 ‘란’

2005-11-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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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의 골육상잔에 배신감
떠돌이 노영주의 처절한 최후

일본의 거장 아키라 쿠로사와가 75세 때 만든 그의 마지막 걸작 사극으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동양적으로 해석한 1985년작. 심오한 주제와 찬란한 이미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방대한 서사극이다. 감독은 뛰어난 얘기꾼의 능력과 명화가의 일필휘지의 솜씨로 음모와 배신과 권력욕과 살육 그리고 권모술수와 복수가 뒤엉킨 인간 우행을 드러매틱하면서도 섬세하고 아름답고 또 장엄하게 묘사했다.
16세기 내란이 판을 치던 때. 노영주 히데토라(사무라이 영화의 1인자 타추야 나카다이)는 대권을 장남 타로에게 인계하고 차남 지로와 삼남 사부로에게는 각기 제2, 제3의 성을 물려준다.
그러나 사부로는 두 형이 곧 남의 땅에 욕심을 내 살육을 자행할 것이라며 아버지의 결정에 불복하다 추방당한다. 타로와 지로의 탐욕 때문에 살던 곳에서 쫓겨난 히데토라는 30명의 무사와 함께 떠돌이 신세가 된다. 히데토라 일행은 폐쇄된 성에 거처를 정하나 두 아들이 여기까지 쫓아오면서 히데토라의 무사들과 두 아들의 대군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이 장면이 숨이 막힐 정도로 처절하게 아름답다).
타로는 지로를 절대권력의 영주로 만들려는 지로의 장군에 의해 살해되고 남편 못지 않게 탐욕스럽고 간교한 타로의 미망인 가에데는 어수룩한 지로를 위협, 사리사욕을 취한다. 아들들로부터 배신당하고 형제간 싸움에 장남이 살해되는가 하면 반세기 동안 자신이 정복해온 모든 것이 초토화하는 것을 목격한 히데토라는 분노와 배신감에 광인이 된다. 마침내 히데토라는 사부로와 재회하나 사부로마저 지로의 병사에 의해 저격 살해된다. 모든 것을 상실한 히데토라는 절망감을 못 이겨 숨진다.
일본과 프랑스 합작영화로 동양적 허무주의 사상이 가득하다. 나카다이의 연기가 뛰어나고 토루 타케미추의 귀기 서린 음악이 아름답다. 오스카 의상상 수상. 나카다이와의 인터뷰와 영화제작에 관한 기록영화 등 부록이 담긴 2장의 디스크 DVD가 나왔다(11월22일 출시). 40달러. Criter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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