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나는 놀 것이다’

2005-11-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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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맥페린 스토우 목사가 쓴 ‘내가 다시 목사가 된다면’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스토우 목사님은 미 연합감리교단에서 42년간을 사역하신 분이다. 이 분은 크고 작은 교회에서 목회도 하셨고, 신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셨으며, 주재 감독(Presiding Bishop)으로 오랫동안 섬기기도 하셨다. 그가 은퇴를 일년 남겨 놓고 지난 40여년 간의 목회를 되돌아보며 물은 질문이 “다시 목회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스토우 목사가 나열했던 아쉬움의 목록들 중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는 놀 것이다”라는 제목이다. 목사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심각하고 근엄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목사와 노는 것을 연결시키는 것은 매우 어색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한국 교회 안에서는 ‘불경죄’에 해당할 정도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목사들은 노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사회 관습이라는 올무 때문이기도 하지만 별로 놀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번은 한국에서 방문오신 목사님 네 분이 골프를 치러 갔다. 한국 사회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미국이니까 한번 쳐 보자고 간 것이다. 그 중 한 명은 제법 골프를 쳐본 사람이었고 나머지는 골프에 관한 한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1번 홀에서 티샷을 날리고 필드로 들어갔는데 볼이 제대로 맞을 리 없다. 그것도 세 명이 한꺼번에 땅 볼을 쳐 대니 잔디에는 계속 흠집이 났고, 잃어버린 공을 찾느라고 한 홀을 가는데 수십 분이 소요되었다. 뒤에서 기다리는 팀들이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클럽 하우스에서 방송이 울려 나왔다. “지금 일번 홀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 속히 밖으로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들이 냈던 돈을 전액 환불해 주면서 다시는 오지 말라고 목사님들을 쫓아냈다고 한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이것은 실화이다. 제대로 놀아보지 못한 우리의 정서가 하루아침에 바뀔 리가 없다.
물론 골프나 세상 잡기에 너무 심취해 목회를 망치는 목사님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어진 목양에 충실한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논다’는 개념을 부담스러워 한다. 교인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죽으라고 뛰는 판에 목사가 어떻게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정상적인 목회자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생각이다.
그러나 ‘논다’는 것을 경건의 반대 개념으로 본다거나 비생산적인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도 6일간 창조하신 후에 하루를 쉬셨다. 그가 손수 만든 자연과 피조물을 보시며 즐거워하시고 그 기쁨을 누리신 것이다. 이것을 흔히 재창조의 시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목사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일에만 쫓겨다니지 말고, 석양을 보며 차 한잔을 마시는 여유가 필요하다. 가끔은 세상 책도 읽으면서 재잘거리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목사도 엄연한 하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박 성 근 목사
(로스앤젤스 한인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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