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샵걸’(Shopgirl)★★★★(5개 만점)

2005-10-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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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샵걸’(Shopgirl)★★★★(5개 만점)

마라벨과 레이가 레이의 저택에서 LA의 야경을 즐기고 있다.

타향살이 20대 처녀 사랑과 좌절

할리웃의 정크영화만 보다가 그 정크 제조근 장본인들인 메이저가 내놓은 이런 아담하면서도 깊고 감정이 소복하게 담긴 소품을 보니 마음이 기쁘다.
다재다능한 코미디언 스티브 마틴이 쓴 단편소설을 마틴이 각색하고 또 제작과 주연도 겸한 고독과 관계에 관한 진실하고 차분하면서 또 달곰씁쓸한 드라마다.
소외와 관계단절의 도시 LA에서 일어나는 우수가 깃든 메이-디셈버 로맨스의 얘기인데 전체적으로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불쑥불쑥 튀어나는 매우 우스운 삽화로 교란시키고 있다.
LA 다운타운의 야간 헬기촬영으로 시작되는 영화의 카메라가 낮이 되어 머무는 곳은 베벌리힐스의 고급 백화점 색스 핍스 애비뉴. 카메라는 손님이 없는 장갑과 넥타이 판매대에 무료히 서 있는 20대의 청순한 용모를 한 미라벨(클레어 데인스)을 향해 서서히 다가간다.
버몬트에서 성공하기 위해 LA에 온 미술가인 미라벨은 타향이 너무나 고독해 코인 런드리에서 말을 거는 상거지 차림에 말이 많은 제레미(제이슨 슈와츠맨)의 데이트 신청에 순순히 응한다.
그리고 금방 섹스를 하는데(이 장면이 몹시 웃긴다) 제레미는 미라벨을 진짜로 좋아하는 반면 미라벨은 그렇지 않다.
이런 미라벨에게 접근하는 것이 50대의 닷컴 백만장자로 LA와 시애틀에 각기 고급 주택이 있고 자가용 비행기까지 있는 세련된 멋쟁이 레이(마틴).
레이의 점잖고 집요하며 또 정성이 가득한 구애를 미라벨은 승낙하는데 레이는 첫 섹스 후 미라벨에게 둘의 관계를 열린 상태로 하자고 선언한다(마치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그것처럼). 마라벨과 레이의 관계가 중점적으로 이어지면서 삽화식으로 미라벨에게 버림받고 록그룹과 함께 전국을 도는 제레미의 모습이 묘사된다.
레이는 여인과의 장기적 관계를 원치도 믿지도 않는 사람인데다 나이가 30년이나 차이가 나는 미라벨과의 관계는 필연코 이별로 끝나리라고 믿고 있다.
반면 미라벨은 레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상심하는데 결국 그녀조차 메이-디셈버 로맨스의 메울 수 없는 간격을 인정하고 만다. 사랑을 억제하고 물리치려는 레이와 전적으로 사랑하려는 미라벨의 가슴의 줄다리기와 오해와 연민과 애착이 마틴과 데인스의 민감하면서도 섬세한 연기에 의해 완벽하게 묘사된다.
특히 데인스의 투명한 연기가 신선하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찡해진다. 촬영과 음악(다소 과하지만)도 좋다. 애난드 터커 감독. R. Touchstone. 아크라이트(323-464-4226), 모니카(310-394-9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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