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09-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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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남미 ABC 3국과 스페인 제국

제396회. 스페인제국 9. 콘스탄티노플 함락 1

1100년의 역사를 가진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현재 소아시아에 위치한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로 유럽 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로 건너편이 BC 13세기 올림포스의 신들도 참전하여 10년을 끌었던, 고대의 가장 화려했던 트로이 전쟁의 전쟁터인 트로이와 마주 보고 있는 동서양의 교차점인 콘스탄티노플, 그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투르크의 거대한 물량공세에 맞서 처절하게 저항했던 두 달간의 공방전을 잠시 되돌아보자.
1452년 오스만 르크의 술탄 메메트 2세(마흐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 맞은 편에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유럽과 아시아는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폭이 3km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경계로 하고 있다. 그런데 술탄이 아시아쪽 해안에 포대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오스만투르크가 소국들의 각축장이었던 발칸반도 일대를 모조리 정복하여 오스만투르크 영내의 떠있는 섬 같은 존재가 된 콘스탄티노플은 바다가 외부로 연결되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런데 그 바다를 통제하기 위한 투르크의 요새가 건설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쪽 요새를 완성하고 대포를 설치한 오스만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왕래하는 선박으로부터 통행세를 징수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선박들이 통행세를 내지 않고 도망쳐서 포격을 받았으나 대포 성능이 시원치 않을 때라 피격되는 배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오스만 요새의 대포는 통행세를 받기 위하여만 설치된 것은 아니었다.
술탄 메메트 2세는 난공불락의 3중 성벽을 가진 콘스탄티노플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바다 쪽에서 압력을 넣기 시작한 것이었다.
1452년 가을 어느 날 우르반이라는 이름을 가진 헝가리인이 술탄을 만나기를 청하였다. 신도 파괴할 수 없다고 생각돼 온 콘스탄티노플의 육중한 성벽을 깨뜨릴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이 헝가리인을 비웃던 술탄의 수하들은 나중에라도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 정신이 조금은 이상해 보이는 이 젊은이를 술탄에게 데려갔다.
두루말이 다발을 가지고 시종을 따라온 헝가리인은 술탄에게 절을 하고 카펫 위에 투르크식으로 앉더니 두루말이를 펼치고 설명을 시작하였다. 그는 본격적인 설명을 하기 전에, 똑같은 목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을 찾아갔었으나 문전박대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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