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09-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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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남미 ABC 3국과 스페인 제국

제389회. 스페인제국 6. 여왕 이사벨라
국내에서는 강력한 대귀족들이 까스띠야의 왕권을 크게 강화하게 만들 이 결혼동맹에 필사적으로 반대하였으며, 국외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에 강대국이 출현하면 자국의 위협이 될 것을 염려한 프랑스의 루이 11세가 펄펄 뛰고 있었다.
엔리께 4세에게는 Juana라는, 출생이 좀 의심스럽고 머리가 약간 모자란 딸이 하나 있었다. 이러한 약점 때문에 Juana를 다음 왕위 계승자로 지명하지 못하고 여동생인 이사벨라가 왕위 계승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아라곤의 왕자 페르난도와의 결혼설이 나돌기 시작하자 깜짝 놀란 귀족들은 후아나를 왕위 계승자로 다시 추대하기 위하여 결집하였고 우유부단한 왕 엔리께에게 압력을 넣어 이사벨라를 찾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페르난도와 이사벨라는 이 결혼에 대하여 충분히 심사숙고했으며 궁극적으로는 그들 자신이 결정한 것이었다.
이 결혼은 양국이 결합하여 하나의 강력한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아라곤의 왕가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었다. 당시 아라곤은 프랑스의 루이 11세의 팽창정책에 밀려 고전하고 있었고 국내의 반란으로 사면초가의 형세였던 것이다.
이사벨라는 미인인데다가 당당하고 결단력을 구비한 여자여서 주변국에서 여러 명의 구혼자가 있었다.
그녀의 구혼자들 중 너무 잘난 척하는 프랑스의 샤를 7세의 아들 샤를과 나이 먹은 홀아비인 포르투갈의 왕 알폰소 5세는 정치적인 고려와 그녀의 채점에서 탈락했으며, 인물도 멀쩡하고 옹색한 처지에 있는 아라곤의 페르난도가 낙점된 것은 까스띠야의 의도대로 협상 내용을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두 나라가 합병하되 제1 통치자는 이사벨라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1469년에 거행된 이 결혼동맹으로 5년을 끌게 될 까스띠야의 왕위계승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1474년 까스띠야의 왕인 엔리께 4세가 죽자 이사벨라는 주저 없이 자신을 까스띠야의 여왕으로 선포하였다. 엔리께 왕의 딸인, 약간 머리가 모자란 후아나도 지지자들인 귀족들에 둘러싸여 자기야말로 까스띠야의 여왕이라고 선언하였다.
이렇게 벌어진 왕위계승 내전은 포르투갈의 개입과 아라곤의 개입으로 전 이베리아 반도로 번졌으나 새 신랑 페르난도의 뛰어난 협상능력과 홀아비 포르투갈의 왕 알폰소 5세의 무능, 거기다 죽은 까스띠야의 왕 엔리께 4세가 성불구자로서 후아나가 딸일 수 없다는 ‘카더라 통신’에 힘입어 이사벨라의 최종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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