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08-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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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남미 ABC 3국과 스페인 제국

제376장. 남미편 26. 칠레 3. 피노체트의 쿠데타

1970년 칠레의 대통령 선거에서, 서반구 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하여 좌파가 집권에 성공한, 인민연합의 아옌데 고스센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 좌파가 집권하자 많은 국민들이 은행 예금을 인출하였고 특히 중산층과 상류층은 재산과 함께 국외로 탈출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아옌데는 집권중 동광을 국유화하고 토지를 징발하였으며 외국인 기업들을 수용하였다. 이는 대외 종속과 제국주의의 착취로부터 칠레 경제를 독립시키고 국가의 부를 국민들에게 재분배한다는 의욕적인 결정이었으나 심각한 국제적인 반발과 미국의 경제 봉쇄 조치를 불러왔다. 이러한 와중에도 아옌데는 1973년까지 은행, 철강, 초석광, 어분 등의 국유화로 칠레 총생산의 50%를 국유화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국에서 좌, 우파의 충돌이 빈번히 일어나고, 파업과 테러가 횡행함으로써 국가는 혼란의 극에 달하였다.
1973년 9월11일(미국의 9.11사태가 일어난 날과 같다) 강력한 반공주의자인 칠레군 사령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군부 쿠데타를 성공시켜 정권을 장악하였으며, 피노체트는 미국식 경제체제의 추종자인 시카고 학파에게 칠레 경제를 전담시켰다.

시카고 학파란 칠레의 가톨릭대학과 미국 시카고대학 간의 학술교류협정 체결로 많은 칠레의 유학생들이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연구함으로써 형성된 경제학파이다. 피노체트는 시카고 학파의 조언에 따라 강력한 정부를 구성하고 시장경제 이론에 따른 안정화 정책을 추구하였으며, 국영기업을 민영화하였다. 정치가 안정되고 시장경제가 탄력을 얻으면서 인플레를 하락하였으며, 외환보유고는 증대하였고 연평균 성장률은 6~7%를 웃돌았다. 경제적으로는 민영화와 개방정책을 지향하여 칠레는 경제 안정기에 들어섰으나, 피노체트 정권의 인권탄압은 극심하였다. 피노체트 정권은 공산주의자에 대한 탄압뿐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 체제도 정권의 위협으로 간주하였다.
피노체트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정상적인 자유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즉, 우리 나라의 유신체제와 아주 닮은, 어쨌거나 좀 이상한 민주주의였으며 이로 인해 공산·민주 양쪽의 인사 3만여명이 희생되었다. 칠레의 인권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떠오르자 1980년 피노체트는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헌법을 국민 투표에 부쳐 확정지었다. 희생자 숫자가 한국보다 좀 많긴 하지만, 박 대통령이 한 모든 것을 어쩌면 그렇게 속속들이 배워갔는지! 아마 벤치마킹이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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