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내산 정상에 울려퍼지는 찬송가

2005-05-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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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인들도 놀라는 한국인들의 뜨거운 성지순례 여행 바람

목사님! 커피! 라면!

모세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40년 동안 헤맨 광야가 사이나이(Sinai) 반도다. 사이나이는 한때 이스라엘이 점령한 적도 있었으나 현재는 이집트 영토로 카이로에서 자동차로 8시간 거리에 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마운트 사이나이)이 바로 이 곳에 위치해 있다. 유대인에게 있어 모세는 예언자요, 지도자요. 민족의 영웅이다. 때문에 시내산은 유대인의 성산으로 간주되어 왔다.
시내산은 볼수록 신비함이 느껴지는 산이다. 허허벌판에 나무라고는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 광야에 우뚝 솟아 있고 산 전체가 벌건 주황색이다. 해발 2,285미터로 한라산보다 높은 바위산이며 현지에서는 ‘예벨 무싸’(모세의 산이라는 뜻)로 불린다. 날씨가 너무 더워 낮에는 시내산에 오르는 것이 무리다. 그래서 시내산 등산은 새벽 2시에 시작된다. 그것도 낙타를 타고 하는 등산이다. 캄캄한 새벽 산밑에서 아랍인들이 자기 낙타를 타라고 소리 지르며 손님을 잡아끄는 장면은 그 자체가 관광거리다. 산 중턱까지 올라가는데 10달러 - 낙타는 밤눈이 밝기 때문에 암흑 속에서도 자갈길을 잘 살펴 산 정상 밑 휴게소에 이르는데 이 곳에서부터는 산이 가팔라 2시간 동안 걸어 올라가야 하며 숨이 찰 정도의 등산에 속한다. 그런데도 신앙심 깊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포기 않고 정상에 오른다.
구멍가게처럼 생긴 휴게소에서는 커피 등을 파는데 놀라운 것은 아랍인들이 한국어로 “목사님! 커피! 라면!”이라고 외쳐대는 광경이다. 이들은 동양 남자만 보면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아마 한국에서 성지순례 온 여신도들이 인솔 목사를 찾아다니며 ‘목사님’이라고 소리치니까 ‘남자’와 ‘목사님’을 동의어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더 놀라운 것은 시내산 정상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는 한국인들의 찬송가 합창이다. 기자가 간 날은 정상에 약 200명이 올랐는데 동이 트면서 옆을 살펴보니까 한국인 60여명이 세군데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까 서울 성수동 교회라고 대답한다. 한국에서는 교회마다 성지순례 여행 바람이 일어 시내산과 예루살렘 다녀오는 것을 성경 클래스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한국인 관광객이 줄면 시내산 마을의 비즈니스에 굉장히 타격이 온다고 한다.
시내산 입구에는 ‘세인트 캐더린’이라는 교회(사진)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로 로마 황제 콘스탄틴의 어머니 헬레나가 AD 330년 모세를 기리기 위해 불타는 떨기나무 자리에 세웠는데 현재 그리스 정교회 신부들이 관리하고 있다.
시내산의 해돋이는 절경이다. 처음에는 벌겋게 달아오르다 핑크색으로 변하고 다시 황금색으로 봉우리들이 웅장한 모습을 보인다. 그 속에서 맑은 새벽 공기를 타고 울려 퍼지는 한국인들의 찬송가는 코리안 크리스찬의 극성과 정열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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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내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사이나이반도 전경은 공해가 없는 탓으로 지평선 끝까지 내다보여 웅장하기 이를데 없다. 새벽 등산을 마치고 내려가는 외국인 성지순례단. 정상에 올라온 사람들중 3분의1이 한국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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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시내산 휴계소.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들로 꽉차 발들여 놓을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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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정상에서 해뜨기를 기다리고 있는 관광객들. 해돋이가 시작되면 시내산의 색깔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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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래 있는 캐더린 호텔. 등산하는 관광객들은 새벽 2시부터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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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한국여성이 낙타를 타고 산을 내려오고 있다. 남자들은 대부분 걸어서 내려온다. 낙타는 올라갈때는 10달러 이지만 내려올때는 5달러에 흥정할수 있다.

이 철
<이사>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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