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05-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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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중남미 독립과 아메리카 제국

제290회. 아메리카제국 26. 2차 대전
10. 노르망디 상륙작전
독일군이 소련 전선에서 밀리고 있을 무렵, 미국과 영국은 독일의 숨통을 단번에 조여버리기 위한 유럽 상륙작전에 돌입해 있었다.
연합군 상륙작전을 예측한 독일은 도버해협 반대편의 파스칼라이스에 상륙할 것으로 추정하고 막대한 시설물을 장치하였다.
즉, 지뢰밭, 수뢰, 콘크리트 구조물, 수중 장애물 등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할 장애물들과 즉각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을 집중 배치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연합군은 노르망디에 상륙하였고, 독일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모든 시설물은 무용지물이 되었으며, 대기 병력 또한 이동에 시간이 걸려 상륙 저지에 보탬이 되지 않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원래 노르망디는 10세기께 북쪽의 노르만족(바이킹)의 침략과 약탈에 견디다 못한 프랑스왕이 노르만의 부족 추장에게 따듯하고 비옥한 프랑스 땅의 일부를 삶의 터전으로 제공할 터이니 우리 애들 좀 제발 건드리지 말라고 사정하여 바이킹에게 할양된 봉토이다. 약 2세기 후인 12세기에 이 땅에서 태어난 윌리엄공이 영국을 쳐들어가 정복하는 바람에 졸지에 영국은 프랑스 땅이 되었었다.
1944년 6월6일,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장 지휘하에 미·영·캐나다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였다. 먼저 수송기 2,300대와 수많은 글라이더를 동원하여 공수부대를 독일군 배후에 투하시켜 거점을 확보하고, 항공기 1만3,000대, 함선 6,000척을 동원하여 병력 100만명, 물자 60만t, 차량 20만대를 상륙시킨 어마어마한 규모의 상륙작전이었다.
양동작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독일군 지휘부의 일사불란하지 못한 지휘 체제와, 히틀러가 모든 최종 명령을 직접 내리도록 되어있는 멍청한 명령체제는 제때에 상륙저지 작전을 펴는데 막대한 걸림돌이 되었으며, 결국 독일군은 그들의 심장부를 강타할 연합군 상륙을 큰 대가없이 허용하였다.
연합군은 독일군과 치열한 공방 끝에 독일군 4만명을 포로로 잡은 채 상륙작전은 성공하였고, 이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독일 본토로 진격하기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으며, 2차 대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강력한 교두보가 확보되었다.
이 상륙작전이 큰 어려움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연합군의 제공권 확보에 있었다. 당시의 모든 항공기보다 성능이 월등한 미국의 P-51 무스탕 전투기의 개발로 독일 공군은 1944년 겨울쯤에는 전멸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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