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리처드 닉슨 암살’ ★★★★(5개 만점)

2004-12-3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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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닉슨 암살’ ★★★★(5개 만점)

새뮤얼(션 펜)이 비행기를 납치하려고 공항구내로 들어서고 있다.

(The Assassination of Richard Nixon)

분노의 세일즈맨 내적붕괴 파헤쳐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대의 뒤숭숭하고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좌절에 빠진 한 소시민의 분노와 빗나간 보복의식을 야무지고 간결하면서도 무드 짙게 그린 잘 만든 드라마다. 7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들인 ‘택시 운전사’와 ‘대화’등을 연상케 하는 작품.
이 영화로 감독 데뷔한 닐스 멀러는 가정과 사회생활 모두에서 실패하고 그 좌절감을 엉뚱한 곳에다 터뜨리는 한 세일즈맨의 내적 붕괴를 마치 학생들이 생물시간에 개구리 해부하듯 주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런 인간의 좌절감을 지난해 ‘미스틱 강’으로 오스카 주연상을 받은 션 펜이 얼굴과 온 몸의 신경과 근육을 바짝 조여가며 폭발 일보직전의 위기감으로 묘사한다. 그의 속이 푹푹 썩어나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아내 마리(네이오미 와츠)와 어린 자녀들로부터 별거 당한 사무실용품 가게 세일즈맨 새뮤얼 빅(펜)이 자기 심정을 녹음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진지하고 착하나 소심하고 무능력한 새뮤얼은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고 세일즈맨으로도 성공해 보려고 갖은 애를 쓰나 모두 실패한다.
영화는 워터게이트의 소음을 끊임없이 배경으로 깔고 새뮤얼의 꿈들이 하나씩 무너지고 거부당하는 과정을 치열하고 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는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마리를 찾아가 재결합을 호소하나 거절당하고 세일즈맨으로서도 무능해 해고를 당하면서 마침내 속으로 억누르던 좌절감과 분노가 그의 인간성과 제정신을 무감하게 만들어 놓는다.
새뮤얼은 자신의 불행은 시민을 행복하게 살도록 해줘야 하는 대통령에게 있다고 확신하고 그 실패의 책임자인 닉슨을 암살키로 결심한다. 새뮤얼은 의족 속에 권총을 감춘 뒤 비행기에 타 조종사를 위협해 비행기를 백악관에 추락케 할 계획을 짠다(9.11테러가 연상돼 섬뜩하다). 그러나 새뮤얼의 모든 다른 시도와 마찬가지로 그의 이 암살시도도 실패하고 만다.
감독은 자칭 ‘한 알의 모래’인 한 남자가 자신이 다룰 수 없는 사회체제에 대해 막무가내식 분노를 터뜨리게 되는 동기를 검사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실패자라고 할 수 있는 새뮤얼(‘택시 운전사’의 트래비스 비클과 똑 닮았다)은 순진할지는 모르나 방향감각을 잃은 무능한 인간으로 자기가 속해 있는 세계를 결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다.
그가 얼마나 아이 같을지는 그의 블랙 팬서 집회 참석장면에서 우습게 표현된다. 깨어진 아메리칸 드림에 의해 배신당한 남자의 얘기로 흥미진진하다. R. Think Film. 선셋5(323-848-3500), 모니카(310-394-9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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