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냉수 한 그릇

2004-11-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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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철 목사의
짧은 글 긴 여운

평소 유달리 물을 많이 마시는 저는 설교 후엔 특히 더 많은 물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어디서든 설교 전엔 반드시 물부터 먼저 챙겨야 합니다. 지난 9월 21일 경남중고등학교 신우회가 동창들을 위해 부산일보 강당에서 1일 집회를 열었을 때의 일입니다. 강당에 입장하면서 봉사위원에게 물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제 자리로 가져다준 물 잔이 얼마나 작은지 낙심천만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설교 전엔 감히 마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설교 후를 위해 물 잔을 제 앞에 고이 내려놓았습니다. 잠시 후 옆자리의 노인이 ‘물 한 모금만’ 마시자고 했습니다. 물 잔을 건네 드리는 것과 동시에 그분은 단숨에 잔을 비워 버렸습니다. 저는 문자 그대로 ‘한 모금만’ 마실 줄 알았는데 그분의 한 모금은 한 잔 전부임을 뒤늦게 알았지만 이미 상황은 종결된 후였습니다. 그땐 행사가 벌써 시작되어 새삼 물을 부탁할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설교 후 마셔야 할 생명수를 잃은 저로서는 그저 난감할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나이를 67세라고 밝힌 그분은 초청가수였습니다. 세상에 알려진 유명가수가 아니기에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자 긴장을 풀기 위해 제 물을 다 마셔 버린 것이었습니다. 곧 이어 무대에서 열창한 그분의 ‘마이 웨이’는, 그분 얼굴의 깊게 패인 주름 그리고 턱수염과 어울려 깊은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분이 야속하게도 제 물을 가로챘기에 제가 받는 감동이 더 컸음이 분명했습니다. 동시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상을 잃지 않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흔히 ‘냉수 한 그릇’을 ‘가장 하찮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천 년 전 유대에서 ‘냉수 한 그릇’은 가장 귀한 것이었습니다. 수도도 냉장고도 없던 그 시절, ‘냉수’를 ‘냉수’로 보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가장 귀한 것으로 대접하는 자는 주님의 상을 잃지 않으리란 뜻이었습니다.
저는 전혀 본의 아니게 저의 생명수로 그 노인을 대접했고, 프랭크 시나트라도 줄 수 없는 ‘마이 웨이’의 진한 감동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2004년 11월 ‘쿰회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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