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돈 안되는 가문의 영광

2004-10-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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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도에 바이올라 대학에서 있었던 서부 KOSTA(Korean Students in Abroad) 집회에서 마지막 날에 내 삶을 선교사로 드리겠다고 헌신했었다. 그 당시에, 대학에서 무슨 전공을 택해야 할 지, 앞으로 어떤 미래의 청사진을 갖고 준비해야 할 지 고민하면서 그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첫 날 저녁 집회 때 연변과학기술대학의 김진경 총장님께서 전하신 말씀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여러분, 선교지에서는 영어교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저는 내일이면 바로 중국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말씀을 드리려고 멀리서부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분의 외침 속에서 하나님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고민해 왔던 나의 전공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방향이 분명하게 틀을 잡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을 하게 되었고, 또한 언젠가는 내가 배운 것을 가지고 선교지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길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집회 마지막 날 선교사에로의 삶을 초대하는 초청의 순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삶을 주님께 드리겠다고 고백했던 그 때가 생생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이 감동을 받아 프로포즈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단다. 결국은 선교사의 자리에서 사모의 자리로 바뀌었지만,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헌신한 나의 마음은 동일하기에 감사함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내 여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여동생은 TESOL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중국 땅에 가서 영어교사로서 섬기면서 복음을 나누고 싶은 마음의 부담이 계속 주어진다고 나누었다. 한동안 내 자신이 품었던 영어교사로서의 선교사의 삶이 내 동생에게 먼저 현실로 이루어진다니...
지금은 12월말에 중국 도문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실, 영어권 2세 목회자와 결혼한 막내 여동생도 늘 북한 선교에 부담을 갖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6개월 된 어린 딸과 온 가족이 머지않아 그곳으로 이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큰딸은 사모이고, 둘째 딸은 선교사로 나가고, 셋째 딸도 사모이고 곧 선교지로 떠난다고 하니, 친정 부모님 마음이 요즘 찹찹하신가보다. 며칠 전에 부모님께서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다고 하시면서 나눈 적이 있다. 어떤 분은 “딸들 공부시킨다고 돈 잔뜩 쏟아 부었더니 돈 될만한(?) 딸들은 하나도 없네”라고 농담을 하시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야, 부럽습니다. 가문의 영광이겠네요”라고 위로의 말씀을 하신 분도 계시단다. 그 말을 듣고 세 딸들이 다 이구동성으로 “맞다, 맞아, 우리는 다 가문의 영광이야”라고 말하면서 다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대학교 화장실 벽에 이런 낙서가 쓰여 있다고 한다. “기억하라. 당신이 사색에 몰두해 있는 동안밖에 있는 사람들은 사색이 되어 간다.” 철저한 이기주의로 흐르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표현의 최고봉이야말로 예수님의 복음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이 지 영
(LA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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