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만 4천피트 난코스 그랜드 티톤 정상 등반기

2004-10-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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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4천피트 난코스 그랜드 티톤 정상 등반기

그랜드 티톤의 등반 코스. 제일 좌측선에 초등 코스인 오웬-스팰딩(Owen-Spalding).

고산증에‘휘청휘청’…고행끝에 맛본‘삶의 희열’

와이오밍에 있는 그랜드 티톤(Grand Teton)은 해발 1만3,770피트로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 최고봉으로 암벽으로 둘러싸여져 있는 바위봉이다. 미국의 마터호른이라고도 불리는 암봉으로 엄청난 위용에 등반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으로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20개의 루트가 있으며 등반난이도는 남면벽의 5, 6급벽에서부터 북서면의 5급 혼합루트까지 여러 루트가 개척되어있다. 전문장비와 암, 빙벽등반을 하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는 산이기에 전문가이드들이 상업등반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60대 여성을 포함한 미주 한국산악인 5명 이 등반팀을 이루어 그랜드 티톤의 남면벽 ‘Owen-Spalding Route’(초등루트) 등반을 마치고 돌아왔다. 등반팀의 여성 멤버였던 현군순씨(62·이화여대동문산악회 회장 역임)의 5일간의 등반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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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티톤 정상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등반팀.


일년 전부터 꼭 가보자던 그랜드 티톤 산행길이 시작되었다.
다섯명 일행이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 공항에서 오후 1시께 만나 두 렌트 차량으로 스네이크 강(Snake River)을 따라 7시간 운전 후 잭슨시티(Jackson City: Wyoming 주)에 도착해 저녁을 같이하고 이 곳 숙소에 투숙했다.
다음날 제니 레이크 비지터센터(Jenny Lake Visitor Center)에서 산행과 야영 허가증을 받고, 주위 경관을 살펴보았다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의 주위를 돌고 있는 JDR Memorial Parkway와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들은 그림같이 고요하고, 깊고 깊은 무거운 녹색의 물은 무척이나 차가웠으나, 용감히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싶은 충동이 한순간 마음을 설레게 했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9시, 산행이 시작했다. 완전 무장한 무거운 배낭의 무게에 짓눌려 산행에 대한 즐거움보다 달갑지 않은 고생길에 나서 끝까지 무사히 마쳐야한다는 바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하나에서 백까지 얼마나 세었는지? 오후 4시께, 베이스에서 800피트 높이 노어 새들(Lower Saddle) 야영장까지 도착했다. 걱정하던 고산증 증세로 식욕이 없어 저녁도 먹지 못하고 얼음과 돌 틈 사이에 텐트를 치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8시 출발, 로어 새들 야영장, 블랙 다이크(Black Dike)를 거쳐 바늘바위(Needle) 왼쪽을 돌아 12시께 어퍼 새들(Upper Saddle, 4000m)에 도착했다. 이 곳부터 줄을 매고 오웬 스팔딩(Owen Spalding) 3 피치 루트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어려운 암벽등반은 아니나 바위 타는 경험이 있어야 할 등반이었다. 계속 식욕이 없어 물 한 모금씩 몇 차례 마신 것뿐이다.
정상이 가까울 무렵엔 오히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바위들이 낯설지 않고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이젠 제일 높은 곳에 다 왔구나 하는 안도감 때문이었으리라. 오후 3시30분 정상에서 아이들한테 핸드폰으로 몇 마디씩하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버행을 포함한 2번의 줄 하강(Rappel) 덕분에 새들까지는 쉽게 왔으나 바늘 눈(Eye of Neddle) 부근에서는 길이 분명치 않아 돌길을 몇번 맴돌다 오후 8시가 지나서야 모레인 야영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장은 아무런 생각을 돌이켜보고 싶지 않다. 산행을 무사히 끝났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젊지 않은 나이에 고생을 사서해야 하는 억울함을 언제나 호소하는 자신이다. 하지만 잘 갔다온 산행이었고 평생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삶의 하이라이트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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