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2004-10-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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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가기 싫으세요?

내가 은혜로 거저 받은 기쁨을 나누어주고 싶어서 환자들을 자세히 찾는다. 아직 이 세상 가운데 방황하는 영혼은 없는지, 그들과 만나고 싶어서 환자들을 찾는다.

요즘도 바이아그라의 인기는 계속 되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약사 친구를 만나 물었더니 지금도 고국 방문 최고의 인기 선물이라고 한다.
“아니, 그것이 처방 약일텐데 어떻게 마음대로?” 내 질문이 어리석었는지 친구의 대답인즉, “물론이지. 그런데 약을 내주면 환자 백이면 백 명 모두, 사실은 자기가 쓸게 아니고 한국에 있는 친구 갖다 줄거라는 거야! 아니, 누가 물어봤냐구!”
나는 내심 그 친구가 부러웠다. 저렇게 인기 좋은 약을 내줄 수도 있고, 하나만 더 줄 수 없냐면서 사정하는 환자 앞에 단호하게 노우! 도 해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억울하게도 치과에 오는 환자들은 등치 커다란 어른이라도 공포에 질렸거나 싫은데 억지로 끌려온 아이들뿐이어서 오히려 의사인 내가 사정사정 달래가며 치료를 해야한다.
어떤 환자는 더 크게 열어도 보일까 말까한 입 속을 점점 더 오므리기도 하고 핼로겐 램프의 각도에 딱 맞추어놓은 의자 높이에서 도망이라도 가려는 듯 멀어져서 애를 먹인다. 치과가 무슨 고문 장소라도 된단 말인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22년 전 내가 캘리포니아 치과의사 면허시험을 치를 때, 시험 파트너가 되어줄 환자를 고르느라 애를 먹었다.
치과 실기시험에는 몇 명의 실제 환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무나 데려가면 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충치가 시험관이 요구하는 정도에 정확히 이르른 사람, 또 소위 봉을 해 넣는다고 말하는 아말감 처리대상 환자의 경우, 역시 정확히 어떤 치아가 일정 깊이로 상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가끔 LA 타임즈에 보면 <환자 구함> 이라는 괴상한 광고가 나는데 이게 바로 시험 대상이 되어줄 환자를 찾는다는 광고이다.
시험 치를 도시가 먼 곳이면 환자를 비행기로 모셔다가 좋은 호텔에서 숙식을 대접해가며 협조를 구하기도 한다.
환자 측에서 보면 무료로 치료를 받는 셈이지만 어떤 환자들은 따로 일당을 원하기도 하니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시작부터 억울하다.
나 역시 그때 조건에 꼭 맞는 환자를 찾느라 애를 썼다.
시험을 앞두고는 지나가는 사람만 보아도 입을 들여다보았고 개스 스테이션에 가서도 돈을 받는 캐쉬어의 입 속을 재빨리 훑어보곤 했다. 내가 살던 동네 이웃들은 일단 다 나의 매서운 눈매에 한번씩 입 속을 인스펙션 당한 사람들일 것이다.
어쩌다가 비슷한 조건의 환자를 만나면 정밀 진단을 했는데 이때 조금이라도 기준에 못 미치면 속으로 ‘초컬릿을 먹여서라도 저 이를 더 썩게 할 수는 없을까...’ 하고 아쉬워하곤 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전혀 안 무서운 치과의사가 되었고 그 사이 주님을 만나 천국의 기쁨을 소유한 사람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요즈음에도 열심히 환자를 찾는다. 내가 은혜로 거저 받은 기쁨을 나누어주고 싶어서 환자들을 자세히 찾는다.
아직 이 세상 가운데 방황하는 영혼은 없는지, 그들과 만나고 싶어서 환자들을 찾는다. 환자 가운데 마음이 아픈 사람은 없는지,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서 나는 환자를 찾는다. 아픈 치아만 고쳐주는 의사가 아니라 목마르지 않게 할 영원한 샘물을 함께 나누어 마시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환자를 찾고 있다.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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