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2004-10-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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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안의 교회운동

독일 교회가 경건주의 운동으로 신앙의 순수성과 역동성을 회복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좋은 운동도 얼마 가지 못해 부작용을 일으키며 지속적인 경건운동으로 연결되지 못하였다. 역사가들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본다.
지나친 금욕을 교인들에게 강조했기 때문이다. 경건하게 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경건운동이 체제유지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경건신앙이란 짧은 기간의 구호나 운동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끊임없는 교육과 경건한 삶이 자리잡을 시간이 절대 필요하다.
그들의 또 다른 실수는 경건주의에 반대하는 자들을 서슴없이 정죄했다.
그들과 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 자들은 모두 불경건한 사람들로 생각했다. 이들은 결국 기독교를 분쟁으로 몰아넣는 불씨가 되었다. 결과는 경건주의자든 아니든 모두가 신앙의 힘을 상실하고 말았다.
하루는 제자들이 이런 문제를 예수님께 보고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좇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칭찬을 기대했던 그들에게 예수님은 단호하게 “금하지 말라”고 하셨다. 오히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이 말씀의 구체적인 해석이 필요하지만 요즘처럼 교회가 지나친 부흥만을 주장하며 자기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을 이단 혹은 비기독교적이라고 몰아 세우는 경우를 보면서 깊이 생각해야 할 교훈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로 여기신 예수님을 보며 교회는 물론, 한인사회도 비판보다는 화합, 질타보다는 올바른 동기를 줄 수 있는 격려를 배워야 할 때다.
비판은 교회의 근본적인 사명이 아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비판하는 방어적 자세보다는 함께 살 수 있는 객관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고민하는 성숙한 교회와 한인사회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실패한 경건주의자들이지만 그들에게 배워야 할 중요한 운동이 있었다. 이러한 운동은 오늘의 교회 안에 꼭 일어났으면 한다. ‘교회 안의 교회운동’이다.
끊임없이 서로를 돌아보면 나의 신앙상태를 내 자신이 돌아보는 것이다.
검소하게 서로를 돌아보며 격려하는 믿음 운동이 일어날 때 교회와 신앙사회는 조직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산할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단순히 지식과 동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있는 능력이다. 이 능력에서 실제적인 개혁의 체험이 나온다.

손 경 호 목사
(포트랜드 임마누엘 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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