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2004-10-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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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치와 방향치

나는 유난히도 방향 감각이 어두운 사람이다. 오죽하면 운전을 하지 못하게 남편으로부터 열쇠를 빼앗겼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운전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수밖에 없다고들 하지만 그러기에는 좀 중증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왼쪽 오른쪽을 잘 분별 못하는 증세다. 그래서 한번 들어간 곳을 다시 나오다 보면 언제나 주방 쪽으로 가게 된다. 이런 방향치인 나에게 길을 물으면 대답은 간단하다. “그냥 여기에서 쭈욱 가면 됩니다” 나의 실력을 잘 아는 사람들은 다시 질문하지 않는다.
동부에 있을 때 일이다. 그리 크지도 않은 부페 음식점에 갔었다. 열심히 음식을 담아 가지고 앉으려 하는데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한참 동안이나 헤매다가 겨우 자리를 찾게 되었다. 그것도 일행의 도움을 받아서… 그 후부터는 혼자서 음식을 가지러 가지 않는다.
남편은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때로는 집과 좀 떨어진 곳에다 차를 파킹하고는 찾아가 보라고 한다.
엉뚱한 길로 마구가 버리는 나의 모습을 보고 놀려댄다. 아들은 나의 이런 증세를 가리켜 공간 지각능력 결핍증이라고 한다.
이런 것은 그래도 웃으며 넘길 수 있다. 한번은 운전을 하는데 차들이 오는 쪽을 향해 열심히 달렸다. 차들은 모두 정지하고 운전하는 이들의 눈들은 모두 휘둥그레졌다. 마침 경찰이 없어서 무사했지만 나는 그 날 이후 자동차 열쇠를 다시 만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결코 나는 기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방향치인 대신 그는 음치이기 때문이다. 찬송을 부를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화음이 잘 되지 않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증세가 있다. 나는 신경이 쓰여서 편치 못하지만 그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마냥 도취해 있을 때마다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방향치이고 그는 음치이기에 나는 감사한다, 만약 둘이 모두 방향치이면 어찌 되었을까. 또 모두 음치이면 어떠했을까. 상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부부를 서로 다르게 만드신 것 같다. 어느 누구에게도 장점 한 가지를 주시는가 하면 약점도 주신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어느덧 부부는 두 개의 반쪽이 아니고 하나의 전체가 되어 버린다.
남편은 귀머거리, 아내는 소경이 되어 안 들어도 좋을 만한 것에는 귀머거리가 된다. 남편은 고개로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어 끄덕끄덕하는 고개 운동이 아내를 안심시키게 된다. 그런 동안 아내는 눈으로 사랑할 줄 알게 된다.
미소를 띠고 눈으로만 살짝 흘기는 다소의 근육운동이 남편을 안심시킨다.
마침내 아내의 인내는 남편을 살리고 남편의 인내는 아내를 명예롭게 하며 인생 드라마의 막을 내린다.

황 순 원
(CMF선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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