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2004-10-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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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동심

추석이 있는 가을엔 더욱 더 옛 생각이 떠오르며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몇 년 전 느닷없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다짜고짜 “형천이냐”라고 내 이름을 부르는 전화에 우선은 당황스러웠다. 목사인 나의 이름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그 동안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곧 옛 동창의 전화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전화가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고 불려진 나의 이름 속에서 옛 추억들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동심은 나의 속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었음을 강하게 느낀 날이었다.
얼마 전 스무살이 넘어 다시 읽는 동화라는 책을 내용도 살펴보지 않고 샀다. 왜냐하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동심의 세계가 그립기도 하고 어린아이다움이 어른다움을 위하여 오히려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책에는 어렸을 때 즐겨 읽었던 동화 안에서 오히려 장성한 사람으로서 발견할 수 있는 인생 행복의 중요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통하여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좌절하거나 신세타령하지 않는 모습, 가장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 홀로 남들보다 늦게 파티에 들어가야 할 때도, 또한 왕자가 다가와 춤을 청했을 때에 당당히 응하는 모습들을 통하여 인생에서 소중히 간직해야 할 건강한 삶의 자세들을 조명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하나의 꿈으로 담겨 있던 것을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설명을 한 셈이다.
분명 동심의 세계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으며, 어린이의 세계는 어른의 세계와 단절된 것은 아니다. 이 어린아이다움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어른 됨의 성숙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러가지 삶의 환경들은 소중한 어린아이다움을 억압하거나 몰아 낼 때가 많이 있다.
우리가 자라났던 문화는 보다 어른 중심의 문화였던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러므로 어른이 되면서는 막 웃어도 안되고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도 안되며 특별히 약한 모습을 드러내서도 안되었다. 반대로 아이들은 자기의 주장을 해서도 안되고 나서도 안되며 어른들 앞에서는 까불어서도 안되었다. 그 결과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웃음도 솔직함도 자연스러움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의 이름은 사라지고 직함으로 대체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러한 삶 속에서 어린아이다움은 깊이깊이 감추어질 수밖에 없다.
매우 훌륭한 기독교 변증가이면서 사상가인 씨 에스 루이스(C.S Lewis)는 젊은 시절에는 자신이 동화를 읽을 때에 그 사실을 숨겼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서는 자신 있게 동화를 읽는다는 말을 하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양에서도 어린아이 됨을 보이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표현처럼 어린아이다움을 간직하고 표현하는 것은 결코 유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숙함일 수 있으며 어린아이다움이 나타나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일 수 있다.
이 가을에 옛 추억과 함께 우리 속에 담겨있는 동심의 세계도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희망해 본다.

림 형 천 목사
(나성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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