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2004-10-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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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친구

우리는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 부모님은 한국에서 목회를 하셨다. 2년 전에 은퇴하시고, 미국에 오셔서 지금은 영주권을 받아 우리와 함께 지내고 계신다. 아들이 섬기는 교회에서 원로목사로서, 주일 설교도 하시고, 새벽기도회 인도를 돕고, 연장자 사역을 돕고, 때에 따라 심방을 도와주고 계신다. 원로 장로님들과 함께 일 주일에 한번씩은 운동을 나가시고, 영어학교에서 공부도 하신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말 발음이 엉망이어서 할아버지를 아직도 ‘하부지’라고 겨우 부른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의 한국말이 짧은데, 할아버지는 귀가 조금 어둔 편이어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언제나 아빠보다는 한 자락 품이 더 넓은 할아버지는 가장 가까운 친구다.
뒷마당에서 작은아이가 잡은 벌레를 같이 들여다보면서, 한국학교 숙제를 풀어가면서, 할머니가 부르는 동요를 따라 하면서, 할아버지의 손을 얹은 축복의 기도를 들으며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아이들과 할아버지는 문화와 언어와 세대를 뛰어 넘어, 피와 함께 흐르는 내리 사랑을 나눈다.
나는 미국에 와서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마침 미국에 와 계시던 외할머니와 삼년 동안 함께 지낸 적이 있다. 할머니는 참 하나님의 사람이셨고, 또 부지런한 분이셨다. 손주의 식사거리를 준비해 주셨고, 늘 새벽기도회를 함께 다녀오신 후에는, 뒷마당에 나가서 농사를 지으셨다. 깻잎, 호박, 파, 상추… 웬만한 것은 다 있었다. 한 여름에는 호박 농사를 얼마나 잘 지으셨는지, 오백여개의 호박을 따서는 목사님과 교인들에게 나눠주다 못해 한국 마켓에 내다 팔은 적도 있었다.
할머니는 날마다 나를 축복하며 기도해 주셨다. “하나님, 우리 동현이 좋은 목사 되게 해주세요.” 실제로, 난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삼년 동안, 나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축복을 누릴 수 있었다. 학위를 다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고, 좋은 아내와 결혼을 했다. 그건 분명히 할머니의 기도의 열매라고 나는 믿는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할머니께서 다니시던 바로 그 언약교회에서 지금 목사로서 목회를 하고 있는 것도 분명 우연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난 우리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도의 그늘에서 자라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나의 경험을 통해 확신한다. 때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왜 그렇게 하시는 건지, 아이들에게 미처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에 담긴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이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한국말 기도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 속에 담긴 축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할아버지를 닮아 가는 아빠를 보면서, 아이들은 대를 이어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깨달아 갈 것이다. 오늘도 집을 나서면서 가장 가까운 친구 ‘하부지’를 끌어안고 짧은 말로 인사를 나눈다. “학교…다녀…오게…쑤미다.”

김 동 현 목사
(언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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