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2004-09-28 (화)
크게 작게
용돈 주던 날

내게 있는 재물이 모두 그분께서 주신 것인데 어찌하여 다시 내놓는 손길은 그토록 자린고비 같았을까?

자녀에게 용돈을 주는 것은 언제부터가 좋을까?
‘좋은 부모가 되는 법’ 책을 읽어보니 ‘자녀가 먼저 원할 때’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나는 어릴 때 코흘리개 친구들과 집 앞 구멍 가게에 나가서 내 맘대로 군것질도 해보고 또뽑기도 하면서 돈 쓰는 재미를 맛보았건만 이곳 아이들은 돈 쓰는 일도 쉽지가 않다.
올해부터 나도 열 살, 여덟 살 된 두 아이에게 용돈을 주기 시작했다. 주 정부의 아동교육조항 대로 큰애는 한 주에 10달러, 작은애는 5달러씩이다. 아이들이 십일조를 낸다고 매달 첫 주에는 미리 4달러, 2달러씩을 떼어 다시 봉투에 넣는다. 남은 돈으로는 7-11 같은데 들러서 조잡한 캔디 사먹는 재미를 즐긴다.
하루는 용돈을 나눠주려고 불렀는데 ‘아빠 티셔츠가 홈리스 같애.’ 하고 아이들이 키들거린다. 아닌게 아니라 어깨 쪽에 구멍도 나있다. ‘나 나쁜 여자 만들랴고!’ 하며 질색하는 아내의 말은 언제나 귓전이고 나는 그 옷이 편하고 좋다. 신이 나서 열심히 돈을 세는 애들을 불러 말했다. “얘들아, 아빠는 돈이 없어서 이렇게 찢어진 옷을 그냥 입는다. 너희는 돈이 많으니 아빠에게 새 티셔츠를 하나 사다오.” 돈을 세던 아이들이 상자 속에 감추듯 돈을 쑤셔 넣으며 대답했다.
“엄마에게 부탁해서 꼬매달라고 해요.”
“그러지 말고 아빠도 새 옷 한번 사 입게 얼마씩만 보태거라.” 두 아이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본다. “얼마요?”
이렇게 해서 두 꼬마에게 나는 각각 5불씩을 거의 강탈하다시피 받아냈다. 그리고 그 날 밤 자는 아이들 머리맡에 10 달러 한 장씩을 놓아주었다. ‘너희들이 아까 아빠에게 준 5불은 참 고마웠다. 아빠가 두 배로 갚아주마.’ 라는 쪽지와 함께.
밤에 아내와 QT를 나누며 우리는 돈을 내놓지 않으려던 아이들의 모습이 마치 십일조를 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하여 많은 회개를 하였다. 본래 모두 아빠 주머니에서 나갔건만, 그 가운데 조금을 내놓으라는데도 아까워하던 아이들의 마음이 바로 나의 마음이 아니던가.
내게 있는 재물이 모두 그분께서 주신 것인데 어찌하여 다시 내놓는 손길은 그토록 자린고비 같았을까? 내가 아이들에게 돈을 달라고 할 때 필요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알고 싶고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듯, 만물의 주인 되신 그분께서도 내 마음의 중심을 보고 싶으셨을 뿐인데...
어느 새해 첫날 나는 ‘올해에는 헌금을 두 배로 많이 낼 수 있기를’ 기도 제목으로 올렸다. 그리고 그 해 연말 정산을 하면서 보니 그 전 해에 비해 정확히 두 배의 헌금을 낸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날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부끄러움 가운데 회개의 기도를 올렸다.
‘은혜를 폭포수처럼 퍼부어 주기 원하시는 주님, 저는 고작 머리 위에 조그만 종지 하나 올리고서 그 그릇 하나 채워달라고 졸랐습니다.’ 내가 아이들 나이에 맞는 용돈 액수를 주었듯 그분께서도 내 수준에 맞게 재물을 맡기셨을 것이었다.
그 날부터 나는 ‘재물’과 관련된 말씀에 밑줄을 그어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찾았는데 얼마 가지 않아 신명기 8장에서 다시 한번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채우시는 하나님, 은혜 내려주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김범수 <치과의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