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2004-09-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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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은 푸르지 않았다

교회에서 세운 연변자치주 도문시의 장애인 센터 ‘은혜원’을 돌아보기 위하여 8명의 단기선교팀이 11일의 일정을 가지고 중국을 방문하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좋은 선교사님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장애인 담당 공산당 간부들은 우리 팀을 여러 차례 대접하면서, 연변주의 여러 장애인 센터 중 가장 모범적인 사역을 하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선교사님의 사역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 속에 나타나고 있었다. 정신적 결함을 가진 아이들이지만 그들의 얼굴은 그렇게 해맑았다.
올해 여름에 다녀간 대학생 단기 선교팀의 영향인지, 우리를 보면서 거부감 없이 꼭 끌어안았고, 환한 그들의 미소는 그들의 행복지수를 말하고 있었다.
도문 남단의 두만강 산책, 일송정과 해란강, 안개 낀 백두산에서의 간절한 기도, 그리고 장백폭포의 위용, 두만강 하구의 방천--러시아, 중국, 그리고 북한의 교차지점--에서 마신 국산 박카스, 그리고 가난한 북한도시와 부유한 중국도시의 대조적인 모습 등 수많은 일들이 정리할 겨들도 없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떨리게 하였고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북한에서 빵 공장을 하다가 망한 한 조선족의 고백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마음에 남아있다.
“당신들도 그곳에 가서 장사해보세요.” “어떻게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빵을 팔수가 있겠어요.” 그 사람은 북한에서 빵 공장을 열어서 북한 사람을 고용하여 빵을 만들고 그것을 팔러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빵을 파는 것도 잠시, 팔러 다니다가 만난 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한 번 두 번 나누어주다가 결국은 원하지 않는 자선사업가로 변했고 원금을 다 탕진하여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농부가 아무리 가난하여도 씨앗을 먹는 것은 아닌데, 이 형제는 얼마나 동족이 불쌍하였으면 자기 사업 망치는 줄 알면서도 아이들에게 빵 한 덩이를 더 안기려고 했을까?
우연치 않게 만났던 몇몇 탈북자가 감정의 변화 없이 주체사상의 포기를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우리가 북한선교를 생각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이미 북한 사역을 감행하고 계셨다. 북한선교의 주도권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었다. 우리보다도 훨씬 가난한 조선족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미 일하고 계셨다.
한창 탈북자가 많던 시절에 30여명의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며 전도하던 분, 아예 집에 5-6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먹이고 가르치던 분, 방황하는 탈북자를 산속에서 만나 돌아보는 사람 등, 뛰어난 동포애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역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 때, 중국의 조선족은 북한선교의 전면에 선 동역자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눈에 정말 두만강은 푸르지도 않았다.
도문과는 달리 북한의 노 젓는 뱃사공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두만강 저편에 연변을 천국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민족 있음이 애절한 아픔으로 마음을 파고들었다.

민 종 기 목사
(충현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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