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주의 마지막 삶’(Last Life in the Universe)★★★★½

2004-08-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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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마지막 삶’(Last Life in the Universe)★★★★½

켄지(왼쪽)와 노이가 TV를 보다 잠이 들어 버렸다.

운명의 장난으로 맺어지는 남녀

현혹적이요 로맨틱한 고독과 사랑에 관한 마법적 사실주의 작품이다. 독특한 서술 방식과 수수께끼 같은 내용 그리고 크리스토퍼 도일(왕 카 와이의 영화 촬영)의 육감적인 촬영 및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미니말리스틱한 음악 등이 모두 훌륭한 환상적인 분위기의 태국 영화다.
운명의 장난에 의해 문화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남녀가 맺어지면서 엮어지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과 구원의 얘기인데 삼삼하다. 고독하고 어두운 현실에 발이 매인 주인공들(관객도 마찬가지)을 초현실적 세상으로 데려가면서 지친 가슴을 위로해 주는데 그 위로의 손길이 부드럽다.
달콩쌉쌀하면서 어두운 유머가 있는 내용과 두 남녀 배우의 상반되는 연기도 좋지만 멋진 스타일과 최면적인 분위기에 심신이 오리무중을 헤매는 기분을 느끼게 될 특이한 영화다. 태국어와 일본어 대사에 영어자막. 영화의 마법적 작용을 증거하는 작품으로 야릇하게 슬퍼진다.
과거가 비밀에 싸인 과묵하고 깔끔한 일본인 켄지(아사노 타다노부-지난해 베니스 영화제 주연상 수상)는 방콕의 도서관 사서. 죽음을 축복으로 생각하는 그는 자살을 수 없이 연습하는데 영화는 목매달아 죽은 그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그런데 과연 켄지는 죽었을까?).
켄지는 역시 방콕으로 도망 온 자신의 야쿠자 형을 살해한 킬러를 살해한 날 밤 우연히 여동생을 교통사고로 잃고 비탄에 빠진 바걸 노이(시니타 분야삭)를 만나게 된다.
성질 있고 독립적이며 독설을 내뱉는 늘씬하고 아름다운 노이는 별 뜻도 없이 켄지를 바닷가의 낡아빠진 자기 집으로 초대하며 무의식적인 유혹을 하는데 두 사람은 여기서 하루 낮과 밤을 보내면서 서로의 고독을 지우는 작업에 들어간다(무질서인 노이가 질서인 켄지의 세계를 침범하면서 벌어지는 심리 놀이가 재미있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노이의 집에서 둘이 얘기하고 식사하고 TV를 보는 사이 둘 간에 로맨스의 심지가 타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노이는 내일이면 일자리를 찾아 오사카로 떠난다. 과연 켄지와 노이는 영영 헤어지게 될 것인가. 한편 도쿄에서 3인조 야쿠자가 동료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방콕으로 오면서 해괴하게 우스운 폭력이 작렬한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겠지만 마음 문을 활짝 열고 환상의 세계로 들어갈 용의만 있다면 가슴이 녹아들 정도로 로맨틱한 영화다. 성인용. Palm Pictures. 26일까지 뉴아트(310-281-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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