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녀에게 ‘여름’을 선물하자

2004-08-06 (금)
크게 작게
자녀에게 ‘여름’을 선물하자

아이들이 마쉬 연못가에 앉아 자연을 화폭에 담고 있다. 마쉬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색색나비, 잠자리, 날짐승 친구삼고
풀밭에 앉아 자연을 화폭에 담고…

토랜스 마드로나 마쉬 보호구역 나들이

여름방학과 함께 기차를 타고 찾은 외갓집에서의 며칠이 지났을 무렵. 외할머니가 삶아주신 강원도 찰옥수수 맛도 싫증나고, 나이 차이 별로 나지 않는 삼촌들로부터 듣는 귀신이야기도 질릴 때 쯤 되면 삼촌들은 무료함에 젖은 조카를 위해 무언가 획기적인 일을 준비한다. 길다란 망태기에 모기장 그물을 매달아 만든 채를 들고 나선 들판. 찌르찌르 여치의 노랫소리는 아름다웠고 매미의 맴맴 소리는 고목나무 그늘만큼 시원했었다. 대부분의 곤충들은 초등학생의 손에 잡힐 만큼 행동이 굼뜨지 않다. 하지만 가끔씩 야생화 위에 앉은 잠자리는 숨을 죽여 가까이 다가가면 헬리콥터 모양의 날개를 살포시 붙들 수도 있었다. 나이 몇 살이라도 더 먹은 삼촌은 장수하늘소, 방아깨비 이름도 희한한 곤충들을 하나 둘 잡아주었다. 방학이 끝날 무렵, 이런 곤충들은 소년 파브르의 보물 상자에 핀으로 꽂혀져 과제로 제출되곤 했었다.


HSPACE=5

레인저와 함께 마드로나 마쉬의 곤충을 관찰하고 있는 어린이.


자녀들의 여름 방학도 거의 후반전에 들어선 요즘, 과외공부와 각종 캠프에 지친 아이들에게 우리 자랄 때와 같은 추억을 안겨줄 수 있다면. 이런 바람을 갖고 있다면 토랜스의 마드로나 마쉬 보호 구역(Madrona Marsh Preserve)에서의 주말을 계획해보자.
언뜻 보면 원유를 끌어올리는 채굴기가 방아질을 하고 있고 가꾸지 않은 수풀로 둘러싸여 버려진 땅처럼 보이지만 차들이 바로 옆으로 지나다니는 도심지에 이렇게 잘 보호된 자연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곳이다.
43에이커 넓은 대지에는 물오리가 헤엄치는 연못, 상록수를 비롯한 나무들이 가득 심겨져 있고 200여 종의 조류, 20종이 넘는 나비들이 서식하고 있어 흙을 만져보고 생물과 교감하며 자라야 할 자녀들이 자연을 호흡하며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보호 구역에 들어서면 야생의 나무들과 야생화가 들판에 피어있는데 특히 피크 시즌을 맞은 야생 해바라기들이 노란색 꽃망울을 가득 터뜨리고 있다. 해바라기 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프랑스 남부 해바라기 밭 못지않게 근사한 사진이 연출된다.

해바라기와 그 밖의 꽃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들은 하얀 나비, 노란 나비, 호랑나비 등 종류도 가지가지. 가을의 문턱에 다가서는 것을 어떻게 알고 날개가 넷인 빨간색 고추잠자리도 윙윙 소리를 내며 날아든다.
이곳에서는 작년까지 길 건너편 자연 센터에서 빌려주는 곤충 채집 망으로 나비와 잠자리 등 곤충 채집을 할 수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금지하고 있단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호해야 하는 21세기 신인류의 사명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사는 곤충을 잡아 핀으로 꽂아야만 자연을 가깝게 호흡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들판에서 색색의 나비와 잠자리를 뒤따라 다니는 것만으로도 할머니 댁의 추억은 쉽게 되살아났다.
꿩과 비둘기, 참새 등 수많은 종류의 새들이 들판을 파르르 날고 있는 모습 역시 쉽게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조류는 228종 여종. 웬만한 탐조 여행지보다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류는 물론이고 마드로나 마쉬 보호 구역에는 스컹크, 라쿤, 여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야생 동물들이 살고 있다.
연못에는 학을 닮은 흰 새를 비롯해 물오리들이 자맥질을 친다. 이 밖에도 이곳은 개구리, 거북이는 물론, 수많은 수중 생물의 서식처.
어린이들은 지도자와 함께 하는 자연 관찰 프로그램에서 그물망을 가지고 와 이 물 속에 살고 있는 수중 생물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연못 앞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에 앉아 수채화를 그리는 클래스에 참가하기도 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