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개 방송 ‘The Tonight Show with Jay Leno’ 참관

2004-07-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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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방송 ‘The Tonight Show with Jay Leno’ 참관

방청객들의 환호는 녹화방송에 탄력을 부여한다. 제이 레노쇼 녹화장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 작은사진은 니콜 키드먼(오른쪽)이 게스트로 출연한 쇼를 진행하는 제이 레노(왼쪽).

배꼽쥔 1시간 엔돌핀 “펑펑”

좋아하는 그룹 산울림과 대학 가요제 출신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는 특별 공개 방송이 있다기에 방과 후 책가방도 집에 내려놓지 않은 채 그 길로 버스를 타고 여의도로 향한 적이 있다. 걸어서 3분도 되지 않는 거리의 학교를 다니다 처음 장거리 버스를 타 멀미를 어찌나 심하게 했던지.
그래도 산울림 삼형제가 나와 ‘나 어떡해’를 부를 때는 그 먼 거리를 고생고생하며 왔던 게 보람이 있다 싶었다. MC가 다음 가수를 소개하고 나니 머리에 커다란 헤드폰을 쓴 남자가 카메라에 보이지 않게 고개를 숙인 채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한다.

때로 누가 실수를 했는지 잠깐씩 어색한 공백이 있은 후에는 다시 그 남자가 나타나 손가락을 3개에서 2개, 하나로 줄여간다.
그러면 희한하게도 좀 전 틀렸던 장면이 다시 재현됐다. 나중에 그 프로그램을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편집이 무엇인가를 체험했었다.
할리웃은 영화의 본고장이기도 하지만 시트콤과 토크쇼, 게임 쇼 등 다양한 TV 프로그램을 생산해내는 방송제작의 메카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프로그램들은 무료로 방청 티켓을 배부해 방청객과의 교감을 담아내고 있다.
제이 레노와 함께 하는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 with Jay Leno)는 명실 공히 인기 최정상의 토크쇼 가운데 하나. 첫 방송이 송출된 지 벌써 반세기에 접어드는 투나잇 쇼의 진행은 스티브 알렌, 자니 카슨에 이어 제이 리노가 그 바톤을 이어받았다. 수많은 유명인사와 스타들이 그의 프로그램에 앞을 다투어 출연하는 것만 보더라도 투나잇 쇼의 시청자 층이 얼마나 두터운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투나잇 쇼의 대부분은 버뱅크 NBC 스튜디오에서 녹화된다. 인기 정상의 쇼들은 항상 티켓이 부족한데 투나잇 쇼의 경우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녹화 당일 아침마다 항상 방청권을 배부하고 있다.
하지만 방청권을 얻으려면 상당히 일찍 일어나야 한다. 오전 8시, NBC 스튜디오 박스오피스에서 티켓을 나눠주는데 많은 사람들이 방청권을 받기 위해 일찌감치 새벽 6시부터 진을 치고 기다린다.
그 잘난 방청석 티켓 하나 받자고 양반의 자제가 격에 맞지 않게 줄 서고 생난리를 칠까 싶었지만 방송국에 친척 아저씨가 다니는 것도 아닌데 어쩌겠는가. 꾹 참고 줄을 서야지.
야심한 시각인 밤 11시 30분에 시작되는 투나잇 쇼의 녹화는 오후 4시30분. 하지만 아침에 배부 받은 티켓을 가졌더라도 3시30분까지 줄을 서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2시30분에 NBC 스튜디오 앞에 도착했는데 아이고, 도대체 이 사람들은 할 일도 없나. 벌건 대낮부터 벌써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분명 티켓을 가졌는데도 운영 위원들은 마치 나이트클럽에서 사람 기다리게 만들 듯 뜨문뜨문 방청객을 들여보낸다. 과연 들어갈 수 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콩딱거렸던 가슴이란.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거의 마지막 배를 탔는데 운도 좋게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프로그램 녹화 전 플로어 디렉터가 방청객들에게 주의사항을 얘기해준다. 맨 앞 사람들은 제이 레노가 나오면 무대 앞으로 다가와 악수를 하고 환호를 질러달라는 것. 그리고 ‘Applause’라는 사인이 들어오면 힘껏 박수를 쳐달라는 것.
TV에서 항상 보던 투나잇 쇼 스튜디오의 배경인 LA 야경은 가까이서 보니 훨씬 색깔이 화려하다. 머리 위를 쳐다보니 웬 조명이 그렇게 많은지. 언뜻 봐도 4대가 넘는 대형 카메라들이 달리(Dolly)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 헤드폰을 쓴 프로듀서가 업무 지시를 하는 모습이 아주 쿨(Cool)해 보인다. 어쩜 당신의 자녀는 생전 처음 대하는 공개방송의 현장에서 미래의 방송인이 되기를 결심할 지도 모를 일이다.
드디어 요란스런 소개와 함께 제이 레노 입장. 맨 앞에 앉은 죄로 다가가 그와 악수를 하고 환호를 질러댔다. 그의 오프닝은 신문 열 개 분량은 족히 요약했을 만큼 작금의 정치계를 풍자하는 유머들로 가득했다. 특히 그날 방송된 가짜 죤 케리와의 인터뷰는 눈물이 쏙 나올 만큼 재미있었다.
녹화 들어오기 전 충분히 리허설을 했을 텐데도 메인 카메라 아래 선 한 남자는 제이 레노를 위해 끊임없이 커다랗게 쓴 대사를 한 장씩 넘겨주고 있었다. 이날 게스트는 코미디언 탐 아놀드, 부시와 케리 후보를 풍자한 인터넷 애니메이션을 창조한 만화가 둘, 그리고 뮤지션 모리스 데이, 이렇게 4명이었다. 제이 레노는 간단명료하면서도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들을 속사포로 쏘아댄다. 물론 작가들이 머리 터지게 고민한 질문일 테지만.
한 시간 남짓한 녹화는 순조롭게 끝났다. 메인 쇼가 모두 끝나고 뉴스 전후로 들어갈 스팟 예고편을 찍는 장면.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그 말 잘 하는 제이 레노가 발음이 꼬이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 등 실수 연발이다. 7번이 넘는 NG 끝에 마음에 드는 테이크(Take)를 하나 건졌는지 감독이 OK 사인을 낸다.
방송국 측으로서는 무료 방청객들을 초대하는 것이 상당히 귀찮은 일일 터이다. 하지만 방청객과 출연진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교감은 프로그램들을 살아 숨쉬게 만든다.
그날 집에 와서 이사 오고 한 번도 틀어본 일이 없던 TV의 전원을 연결했다. 드디어 제이 레노 쇼 시작. 앗! 신난다고 제이 레노와 악수하는 내 모습이 몇 초 동안 TV에 비춘다. 그의 유머에 숨넘어갈 듯이 웃어재끼는 스스로의 웃음소리를 듣고 공연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어진다.
아침 일찍부터 줄서고 녹화에 참여한 후의 투나잇 쇼는 그냥 하나의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속내 나도록 구석구석을 잘 아는 아주 특별한 프로그램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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