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집 값 올랐다고 섣불리 팔았다간 갈 곳이 없다

2003-12-3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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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때의 기쁨은 잠깐, 집 사기는 ‘별 따기’
매물부족·높은 가격·에스크로 지연 등이 원인

LA 일원 주택 소유주들은 2003년 중 집 값이 또 엄청 올라 기분 좋은 연말을 보냈을 것이다. 과열의 우려 속에서도 집 값은 여전히 상승가도를 달려온 덕분에 집을 샀을 때를 생각하면 큰 부자가 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 팔아볼까라는 생각이 들 법도 했다.
그러나 팔고 나면 살집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비싼 값에 팔 때의 기쁨은 잠시지만, 새 집을 구하는 과정은 한없이 길고 고통스러웠다고 경험자들은 털어놓고 있다.

30대 초반의 하스 부부는 롱비치의 콘도를 지난 9월 중순 시장에 내놓을 때 집이 팔리고 새 집을 찾는데 빨라도 서너 달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션 블러버드에 있는 600스퀘어피트의 작은 콘도는 시장에 내 놓은지 3일만에 원했던 가격보다 6,000달러나 더 올라간 15만5,000달러에 팔렸다. 바이어는 에스크로를 21일만에 끝내길 원했다.


어린 딸아이를 돌보랴 직장 다니랴, 그리고 집을 비워줘야 하는 기간이 짧은 바람에 그는 새 집을 찬찬히 구하러 다닐 겨를이 없었다. 우선 렌트를 찾았으나 임대용 하우스나 아파트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집을 비워 줘야 하는 날 바로 전날에야 로스무어 지역에서 월 2,000달러의 임대용 하우스를 찾을 수 있었다.

집을 팔고 비워준 뒤 오갈 데 없어 곤욕을 치르는 셀러들이 하스 부부만은 아니다. 남가주의 절절 끓는 부동산 경기 덕분에 집을 아주 비싼 값에 팔았다고 좋아했다가 막상 집을 사려는 순간 비를 피할 임시 거처마저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숨짓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주택 공급 부족. 여기에 더하여 남가주 주택가격의 급등과 에스크로상의 지연, 리모델링 지연 등의 문제도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살만한 집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이런 사태를 빚는 주범이다. LA 타운티의 경우 집이 시장에 나와있는 시간이 11월의 경우 기록적으로 짧은 24일에 불과하다. 또 비판매 재고(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집들이 현재의 판매 속도라면 전부 팔리는데 걸리는 기간을 나타냄)도 1.5개월로 극적으로 짧아졌다. 비판매 재고는 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1982년 이후 평균이 10개월이며 주택 불경기였던 지난 1991년 2월의 경우에는 장장 27.9개월 분이나 재고가 있었다. 불과 1.5개월이란 사실은 LA카운티 내에서 집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수치다.

셔먼옥스에 사는 B. 맥게리는 10년 동안 살던 집을 팔았을 때만해도 복권 탄 기분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그것은 곤혹스런 시간의 시작이었음을 알았다. 지난 1993년 차압된 집을 28만8,000달러에 매입했다가 지난 6월 거의 70만달러로 팔았다. 그러나 주택 샤핑에 나와 본 결과 시장은 어마어마하게 빡빡하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샤핑을 부지런히 다녔고 아파트 생활도 두 군데서나 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다시 셔먼옥스로 돌아왔다. 그것도 집을 산 것도 아니고 임대해서.

치노힐스의 한 부부는 30일만에 집을 55만달러에 처분해서 횡재를 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다음은 지옥이었다고 털어놓는다. 9월 중순 집을 판 이후 새 집을 사기 위해 60군데나 다녔지만 구하지 못했던 그는 결국 네 아이를 이끌고 자신의 부모 집에 얹혀서 살고 있다.

주택가격 앙등도 셀러가 바이어로 매끄럽게 전환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데이터 퀵’사에 따르면 11월중 남가주의 주택 중간 평균가격은 33만6,000달러. 일년 전에 비해 16.7%가 올랐다.

작은 콘도를 비싼 값에 3일만에 팔아 기분이 좋았던 하스 부부는 11월 사이프러스의 4베드룸 2배스 하우스를 매입할 수 있었는데, 원래 주택매입 예산 40만달러에서 10만달러나 더 지불하고서야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는 새 집을 구하러 다니는 일은 즐거운 일인 줄 알았는데,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준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주택시장 경직으로 이사들 들고 나가는 일이 꼬여 중간에서 발이 묶이는 셀러들의 사정은 딱하기만 하다. 한 부동산 에이전트는 집을 팔기는 팔았는데 갈 곳이 없어 호텔에서 캠핑을 하는 고객도 있었다며 이 고객은 이삿짐 트럭을 시간당 71달러인데도 불구하고 밖에다 주차시켜두고 있어야 했다고 전했다.

에스크로 과정에서 발목이 잡히는 경우도 많다. 토랜스의 한 에스크로 회사의 앤 로즈는 최근 모기지 이자율이 낮아 서류작업이 밀리면서 30일 걸리던 일이 45일 또는 60일 이상으로 밀리고 있다며 에스크로 지연으로 인해 거래가 깨지거나 지연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컴퓨터와 옷 몇 벌만 빼면 내 모든 것은 임대 창고 속에 맡겨져 있다는 35세의 세일즈맨 데이빗 로젠만은 베벌리우드의 집을 처분한 뒤 새 집을 사는 과정에서 집에 하자가 발견돼 거래가 깨지는 바람에 아파트 단칸방에서 지내는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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